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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음]인류 최고의 선물 "부활"

마태오1 2012. 6. 20. 12:44
 

부 

 

 

                                                                                           고전15:12-58

(관련성구)

마28:1-10, 11-15, 16-20

막16:1-11, 12-13, 14-18, 19-20

눅24:1-12, 13-35, 36-43, 44-49

요20:1-10, 11-18, 19-23, 24-31

행3:13-16

롬6:3-11(5절 중요)

 

서  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은 온 인류가 주님과 함께 장사지낸 엄청난 대 사건이었다.

 

*갈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실 주님의 이러한 죽음이 인간들도 함께 동참 되어져서 함께 죽어 장사 지내었다는데 대해서는 얼른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함께 죽었다는 내가 지금도 버젓이 살아있고 살기위해 열심히 발버둥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안의 자아로 하여금 분명히 어떤사물이나 대상에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나도 죽었다라고 선언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개념만이 맴돌뿐이다.

사실상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며 종말이다.

 

여기에는 행동할수도 없으며 볼수도 없으며 말할수도 없으며 그리고 생각도 할 수 없다. 한마디로 모든 것의 마침표 인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이세상 사람이 주님의 의를 받아들여 믿음을 가질때 주님과 함께 죽어 장사지냈다는데) 분명한 선언을 하고 있다.

 

이것을 인간들이 각자 “나는 이제 죽은자이다.” 라고 분명한 실제 사건으로 여기지 아니하면 그다음 우리를 위한 주님의 부활역사는 자신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능력도 되지 못하는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즉 나하고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는 것이다.(자연인)


이러한 사실이(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우리가 예수 믿는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될뿐만 아니라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 되는 것이며 가장 결론적인 부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살아있는 자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이 필요치 않으며 부활의 참가치를 모른다.

이는 마치 부모에 의해 날 때부터 행복하게 살아온 돈많이 가진 행복한 어린아이가 가난한 거지보고 왜 굶고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참 기쁨은 죽은 자라야 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부활의 참 소망을 갖게 되며 기다릴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죽은 자라야 만이 부활을 통해 진정한 삶의 기쁨과 자유와 감사를 갖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기 때문에 언젠가 죽게되면 주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는 관념만을 가지고 막연한 기대를 하고있다.

 

그래서 세상에 있을때 예수를 잘 믿게되면 우리가 죽어도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게 부활에 관한 정확한 의미일까?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믿는가?.........

 

이들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교회다녀서 언젠가 죽게 되었을 때 나도 주님처럼 부활하여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이 부활의 참된 가치를 알고 소망하는 진짜 참된믿음인가?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 믿는 자들뿐만이 아니라 악한자들도 부활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요5:29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행24:15

-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게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계20:12-15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많은 분들이 이와같은 부활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교회다녀서 예수님을 믿어 부활의 은혜를 입고자 하지만 성경은 믿는 자들뿐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부활한다고 증거하고 있으며 다만 심판에 따라 의인의 부활(천국) 악인의 부활로(지옥) 나뉘어 지게 되는것이다.

 

이제 이 부활신앙을 정리해 주기 위해 성경말씀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서 질문해보면 듣기가 까다로운지 다 들 자신이 각자가 믿고 확신하는 대답들만이 오간다.

 

 

다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럼 무엇을 믿는가?....라고 목사의 자격으로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개중에 신앙의 참뜻을 알아서 주님이 날위해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사함받아 하나님앞으로 이끌어 가게 하시기 위해 먼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믿는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다가 어려우면 “아이고 잘 몰라요 그냥 열심히 잘믿으면 되잖아요”라고 회피하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하도 우리아이가(혹은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 형님, 친척등등....) 교회다니자고 해서.....” 라고 말하여 자기는 상관없이 남들에 의해서 어쩔수 없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게중에는 “우리아이가 목사인데 부모인 내가 안나가면 아들체면이 말이 아닐까 봐서.......”라는등 구차한 말들이 오가며 이처럼  믿는데 있어 믿을 수 있는 조건들을 내걸어 온갖 개인적인 문제들이 다 나오고 있다.

 

즉 가정적인 문제, 건강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처럼 사람들은 신앙을 가지는데 있어서 삶속에 나타나는 어떤조건들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앞에 나아와 해결받기를 원하고 해결받으며 또 유사한 문제가 생기면 예수님께 또 구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모두 이처럼 자기들의 소견에 옳게 보이는 데로 교회안에서 열심히 믿고 나아가면 믿음의 생활을 하는것이라 보고 있는것이다.


신앙과 믿음은 주님이 기뻐하실수 있도록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능하고 연약한 우리를 위해 주님이 해놓으신 것을 우리가 공로 없이 받아들일때 그러한 자들을 믿음을 가진자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단 말인가?

이 사실을 하루이틀에 걸쳐 말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나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해놓으신 그 은혜의 일들을 내 평생 말을 해도 끝이 없 정도다.

그러나 정말 단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것과 나의 자유를 위해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 바로 나를 위해 아니 우리 모든 인간을 위해 하신일이다.


너무도 간단하고 너무도 여러분들이 잘 아는 신앙의 고백이다.


문제는 단순하고도 이 짧은 대답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있다.

믿고 깨닫지 못해서 하루이틀 혹은 일년 이년 혹은 늙어 죽을때 까지 이 귀한 복음을 믿고 받아 들이지 못해 멸망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 조차도 이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실제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채 이론과 아는 지식에 머물고 만다는 사실이다.


날 위해 돌아가신 것을 알고 믿는다고 하지만 그 마음에 아무런 죄사함의 능력도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날위해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고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죄가운데 신음하여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날마다 울며 회개하고 있는것이다.


이 복음이 너무도 쉽고 간단한 말이지만 사단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질수 없도록 세상주인이 되어 인간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또한 자아 의식에 의해 인간스스로가 똑똑하고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기의 노력과 개선으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스스로가 저주와 멸망의 지옥에 빠질 악한 죄인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다 보니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 의해 칼로 찢김을 당하고 있다.

 

A: "예수믿고 구원 받읍시다

(구원이라는것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 살아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B: 예끼 이보슈! 지금현재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무슨 구원을 받으라는 거요!!

(여기에서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죽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기때문에 바로 화를 벌컥낸다.)

A: 그것은 우리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날때부터 불순종한 아담의 피를 받은 죄인이라고 선언하니 또 다시 화를 벌컥낸다.)

B: 예끼 이보슈 그럼 아무런 죄도짓지 않는 어린 아이들도 지옥가는거요? 참 말을해도 흉악한 말을 하네!!...

(일반사람들은 죄인이라고 생각랄때 죄를 지어야만 죄인이라 인식하거나 그리고 자기 양심의 가책속에서 고통을 느껴야 죄인이라고 인식한다.)

B: 그리고 나는 지옥에 갈만한 죄를 짓지 않았소!!

(이렇듯 일반인은 죄를 모든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악하다라고 생각하는 중죄를 지어야 죄짓는다고 생각하거나 지옥에 떨어져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A: 그런데 어쨓든 이런 우리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여 아무공로 없이 우리죄를 갚아주셨습니다.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B: “......” 그건 서양 종교고 우리는 우리 종교가 있으니 상관말아요 다 무엇이든지 진실되게 믿으면 되지 꼭 예수님만 믿어야 천국간다면 그런것 상관없소!!

B: “그리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요 나 죄지은것 봤소?......... ”

B: “도대체 그런 이기적인 종교가 세상에 어디있나.....”

 

라고 자기 중심의 옳다고 여겨지는 의문에 빠져 너무도 쉽고 은혜로운 복음을 사람들은 늙어 흙에 묻힐때 까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보통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으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도를 하다가 나름대로 복음을 알려주면 우선적으로 자기가 잘한것 있나 아니면 못한것있나를 봐서 행위에 중점을 두고 선과 악을 구분짓다 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와 예수님이 어린양으로써 죄의 속죄제물로 말씀(성경)안에 이미 계획되어진 사실을 전혀 받아드리지 못하고 이해를 하지 못함을 알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신앙안에 서있는 우리들에게서 조차도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어느 한부분만 지나치게 고집해서 이것만이 신앙의 전부인양 주장해서 수많은 교단과 교파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죄사함을 통한 구원의 은혜의 감격과 기쁨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수도 없고 생명이 아닌 인간의 삶에다 교회의 주제를 삼다보니 삶의 도덕과 윤리와 덕목을 교회안에서 참된 진리인양 외치다 보니 너무도 쉽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교회를 선택하여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있기도 하다.

 

신앙은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새사람이 되어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죄사함이 없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교훈삼아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인간중심의 행위의 삶에서 생명이 얻어지는것으로 만들어서 율법주의로 흘러가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우리 신앙의 중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행1:22 - 항상 우리와 다니던 사람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4:33 -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행17;30-31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 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고전2:2 -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15:14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7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빌3:10-11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은 구원의 똑같은 선에서 다루어져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 십자가 없는 부활신앙을 가진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죄의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금 쉽게 죄의 경험으로 하여금 방종과 타락으로 떨어진다.

 

또한 부활이 없는 십자가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늘 어두운 죄의 권세가 짓눌려 져서 참된기쁨과 자유를 알지 못한채 어두운 교회 골방에서 홀로 울고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죄에서 해방되어 참된 구원을 받기까지는 자신이 멸망의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악한자임을 깨달아 주님앞에 회개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이런 날 위해 이미 예수님께서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이 사흘동안 지옥의 감옥에서 모든 인간의 죄값을 다 치르고 출소(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게 될 때 비로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라는 인간의 고백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어느 한부분만에 매여서 신앙하는게 아니라 비록 예수님의 생애 전부가(출생- 죽음-부활) 각각 다른 개체로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예수님 한 분 을 통해 완성시킨 것으로 이 전체가(동정녀 탄생,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심, 기적사건, 십자가 죽음, 부활, 재림) 다 하나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전의 모든 구약의 내용들까지도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예정속에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어질 새 언약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기록한 성경안에서 예수님을 주인공 혹은 주연이 되며 나머지 모든 것은(천사, 사단, 아담,노아, 아브라함,다윗,이사야,세례요한,빌라도,가롯유다인간등) 조연즉 액스트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악과, 무화과 나뭇잎,무지개,율법, 성막,성전,십자가등은 모두 주인공을 위한 주변장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장식이나 조연역활이라도 만약 이중에 단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에 잘못 되어진 것이 있거나 다른 방법으로 나타났다고 하면 인류구원의 역사는 무효화 되고 만다.

 

예를들어 예수님이 나시기 전에 이미 옛적 선지자로 하여금 예고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자기 생각에서 비롯되어진 미치광이 행동이 될뿐이다.

 

동정녀 몸에서(마리아에게서) 나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육적사랑에 의해 태어났다면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일반적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가 인류를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다 하더라도 죄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할 수가 없는 것이라서 그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흠없는 어린양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흠없는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서 필연코 육적사랑에 의해 태어난자가 아닌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태어날 필요가 있는것이다.


또 하나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지 않고 자기스스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해보자 사람이 죄를 지어 대신 어린양이 죽어질수 있는 이유는 그 죄가 어린양에게 넘겨줄수 있는 제사장과 넘기는 절차인 안수가 필요하다.

 

구약에서도  죄를 넘겨주는데는 반드시 죄인과 죄를 넘겨받는 흠없는 어린양과 넘길수 있도록 중재하는 제사장과 넘기는 절차인 안수를 통해서 죄가 속죄되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사람의 죄를 넘겨받는데도 이와같은 절차를 통해 완벽하게 다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십자가의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던 것이다.

 

이미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이러한 죄인이 사함받을 수 있는길은 흠없는 어린양이 있어야한다.

예수님이 바로 그 어린양으로서 흠없는 인간으로 오셨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넘길수 있는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

 

세례요한은 이땅의 마지막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에게 안수를 함으로 하나님의 모든 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다음날 주님을 봤을때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시면서

구약의 죄를 넘겨받은 어린양(염소)들이 아사셀 이 되어 광야로 내몰아 가듯이 우리 주님도 3년동안 세상의 광야생활을 하시면서 시험과 인간이 받을수 있는 온갖 고난과 아픔을 가지시고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완성시키셨다.

 

너무도 완벽하다.

이렇듯 하나님의 뜻하신 계획아래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비록 예수님이 자기의에 사로잡혀 인류의 사랑을 가지고 희생했다 하더라도 자신은 유익이 될지 몰라도 인간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것이다.

한마디로 자기식의 희생은 전부 거짓이 되고 무효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약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짐이 없이 선하게 살다가 일반적인 죽음에 의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해보자.

 

 

인간의 죄가 대속적 죽음으로서 갚아지게 되는데 자연적인 죽음으로서는 그 어떤 부활도 인간의 죄가 속죄되지 못한다.

 

우리는 떠도는 소문이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반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듣고 보았지 않은가........


분명한 것은 죄가 분명히 죽음이라는 선언을 예수님을 통해서 마침표가 되어야 만이 비로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아래서 벗어날자가 없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사단의 공중권세잡은자의 죄의 소굴이기 때문에 이땅은 하나님의 불의 심판에 의해서 사라질 땅이기 때문이다.(계16장-20장 계21:1)


그러므로 이땅에서 사는 모든사람들은 비록 훌륭하고 똑똑하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일지라도 사단아래 매여져 있기 때문에 모두 멸망당하고 만다.

 

내주위에 아무리 선하게 사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나의 가장 귀한 가족들이 있을지라도 공중권세잡은자의 소굴안이기 때문에 불로 태움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대자연과 인간이 이루어 놓은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와 문명이 있을지라도 불로 태움을 당한다.

 

이세상은 우리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모든것들이 다 들어있다. 인간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하나님이 보실때는 이세상은 불로 태워질 쓰레기 더미일 뿐이다.

그 이유는 사단에 의해 더럽혀진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주님의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온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셨다고 해보자.

 

 그러나 만일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아래 장사지낸바 되어져서 영원히 죽음의 깊은잠에 살아나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수도 없는 죽음의 감옥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진다.(고전 15:17)

 

그래서 오늘 이 부활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알고 깨닫고 받아드려야 한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모든 것이 다 하나하나 구원의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알기쉽게 이 구원을 이룰려면 그 모든 것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죄에서 놓임을 받아 자유케 된다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임을 알아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렇다면 왜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단지 예수님이 처음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하는 그러한 사실만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뭔가 부족하다.


대체 예수님의 부활이 인간에게 그리고 신앙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너무도 어리섞다.

사실 이세상 어떤사람이든지 간에 행복해지고 싶고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

누구나 다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이룰수 없는 자신의 곤고함이나 낙심 불가능에 떨어졌을때 그 절망감으로 자살이라는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부활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다니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고 있으니 자신도 주님처럼 부활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그동안 믿은 믿음생활로 인해 죽어 부활해서 천국에서 보상받고 사는 것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은 우리 기독교 뿐만아니라 일반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모든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다.

 

가령 불교의 열반 즉 극락세계가 나오는데 이들 역시 살아있을 때 부처님을 모시고 자비를 베풀고 선하게 살면 억겁의 세월을 거친후 가게 된다고 믿는다.(흰두교 이슬람교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 즉 부활신앙은 이런 것 하고는 분명히 다르다.

부활신앙이 단지 우리도 부활하게 되어져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상급받으면서 왕노릇하며 살게된다는 그러한 의미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후에 부활하는 과정을 한번 살펴 보아야 한다.

 

본  론


그 첫 번째는

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야만 했으며 부활해야 했을까?(전제적인 의미) 


그러나 이역시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기위한 과정이다.

그럼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죄에 빠진 인간이 죄값을 갚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전에도 말했다 시피 죄값은 자기의 목숨이다. 즉 사망 죽음인것이다.(롬6;10, 6:23)


하나님을 만나려면 죄를 가지고서는 어느누구도 만날수 없다.

죄가 드러나면 바로 죽여버리는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다.

(출19:21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그래서 하나님을 함께 거할수 있는 자들은 거룩한 자이여만 하며 이 거룩을 입기 위해 자기죄를 위해서 누가 대신 죽어야만 죄값이 지불되어져서 들어갈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속죄제물)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수 있는 속죄제사 규정을 만들어 항상 속죄제물이 바쳐져야 그 죄가 사함받은것으로 여겨 거룩한 자리나 성소에 들어갈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 사망을 이룰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피를 내어야만 한다. (레17:11)

 

이것이 바로 구약의 속죄제사의 기준법이다. 몸안의 피가 몸밖으로 흘러나온다면 그 생명은 죽은 것으로 (사망)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애굽에 열 번째 장자 죽음의 재앙을 치게 되었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집 문설주에 자기 대신에 죽은 양의 피를 바름으로서 “여기는 이미 죽은집이요: 라고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피는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는 은혜의 도구가 아니다.

 

피는 우리집은(혹은 나는) 또다시 죽음을 당할 해당사항이 없습니다.라는 뜻이다.

피는 오직 죽었음을 뜻하는 표시이기 때문에 그래서 장자 죽음의 화살은 달려들다가도 피를 보고는 이미 그곳은 죽은 것으로 여겼기에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온인류를 위해 죽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는 하나님앞에 죄로인한  죽었음을 알리는 선고이기때문에 인간이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인간을 대신해서 죽어야만 했다.

 

(롬5:1 -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엡2:14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속죄제와 화목제물로 자신이 드려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율법에 기록된 속죄의 절차를 다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예수님)이 직접 속죄의 어린양이 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 오셨다.

 

또한 죄없으신 몸이 되시기 위하여  남자의 씨가 섞이지 않는 성령으로 잉태하셔야만 했고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세상죄를 넘겨받는 속죄제의 안수절차를 이행하신 후에 비로소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가신 어린양 속죄제물로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해 화목제물로 하나님(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던 것이다.

 

이로서 온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게 되어 이 땅에 죄와 사망의 사단의 권세는 물러가고 말았다.

 

한마디로 그동안 사단에 의해 죄에 눌려 지옥에 갈수밖에 없던 이 세상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제물로 온 인류가 최소한 죄와 저주의 죽음이 사라진(지옥의 형벌을 피함)  자유와 기쁨의 광복의 날이 되었던 것이다.(할렐루야)

 

그렇다!! 2000년전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제물은 바로  세상에 있는 사단이 망한 날이 된는 것이다.

더이상 2000년전부터 사단은 이 세상에서 주인행세를 할 수 없는 비참한 꼴이 되고 만것이다.

 

이사실은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식민지 생활을 하였을때 미국이란 나라가 일본히로시마에 원폭을 터뜨려 초토화 된것과 똑같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한 속죄를 십자가에서 다 갚고 죽었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 모든사람은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어차피 우리의 의지 하고는 상관없이 죄가 이땅에 왔었고 우리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예수님에 의해서 사단이 망해서 인간에게 죄의 속박을 풀어버렸다면 우리가 애써 믿을필요가 뭐있느냐는 것이다.

그냥 선하게 맘편하게 살다가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물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짓밟아 버렸다.

죄의 세력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실을 듣고 자신의 마음에 받아 드리지 아니하면 우리 인간 중심의 옳다고 여겨지는 자기 생각에 의하여 끊임없이 주를 거부하는 사단의 편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개개인적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어떠한 선한일을 하고 도덕과 윤리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사단의 의해  상관없이 죄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들이다.

 

그런 우리는 저주와 멸망에 빠질수 없는 가장 악하고 무익한 자인가를 깨달아 이러한 나의 죄값을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졌다는 사실을 심중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주님은 우리 인간을 위한 십자가의 은헤로 사단의 권세는 짓밟혔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한 중보자로 이루셨지만 무엇보다도 각각 우리마음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지 아니하면 그 진노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사단과 그의 타락한 천사들이 들어가야 할 그 지옥에 우리들도 함께 사단이 남겨놓은 더러운 인간중심의 육적인 생각에 의하여 저질러진 그 죄로 인하여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깨달음과 내 중심의 무익함을 알아 벌레만도 못한 악한자임을 고백하여 뒤돌아서 회개가 이루어지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하게 보셔서 자신의 피를 우리의 마음에 발라 죄사함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이 두가지가(하나님의 뜻에 의한 예수님의 속죄제물되심과, 우리가 이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우리마음에 피뿌림을 입어 죄사함을 받았다는 확신) 완전히 이루어져야 우리는 죄사함의 은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의 마음에다 주님의 피를 적셔야 하는가?

 

구약에는 자기 대신에 죽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장이 네귀의 제단뿔에 바르고 지성소의 속죄소위에 바른다.

 

온인류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피흘려 죽으셨지만, 그래서 사단의 권세가 망하였지만, 우리는 우리마음에 이러한 사실을 듣고 깨달아 받아들여 내 마음에 주님이 불쌍하게 여기셔서 은혜로 예수님의 피를 적심을 받는 고백을 해야한다.

 

즉 나의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받아드립니다.

예수님이 (당신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으니 나는 당신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을(당신을) 나의 주님으로 모십니다.라고 우리는 심령중심에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이 날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신 그 사실을 마음에 믿고 받아드리면 누구라도 그 마음에 주님의 피가 은혜로 칠해져서 죄사함을 받게 되는 은혜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한 그날은 너무도 인류구원사적으로는 엄청난 대 사건이다.

 

이세상 전체를 보면 자기 세상이라고 여겼던 사단이 그날에 망한날이고

각사람 개인적으로보면 이땅의 모든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죄가 2000년전 십자가의 죽임을 통해 피흘려 죽은 속죄의 날이 그날이었음을 듣게 되는 날이다.(예수님께서 우리죄를 치르기 위해 속죄제물이 되셨대....!!너무 감사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의 세력을 멸하기 위해서 죄없으신 몸으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초강력 원폭을 터뜨렸지만 아직 죽음가운데 그대로 머물러 있다. 즉 사흘동안 죽어 지옥에 가 계시는 것이다.

 

죽음후의 형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죽으면 그뿐이라 한다.

그래서 이세상살기 힘들면 자살이라는 길로 죽음을 스스로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세계는 바로 태움을 입는 불의 세계인 것이다.

인간의 죄값이 죽으면 다 갚아져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지옥이라는 곳에 감금되어지는데 그곳이 바로 불의 세계인것이다.

 

지옥은 죄의 값에 따라 형벌받는 곳이 아니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러면 지옥은 무엇인가?

사단의 감옥이 지옥이다.

 

사단과 그 타락한 천사들이 감금되어져야 할 곳이 불의 세계인 지옥인데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중심의 옳은 생각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최후에는 사단이 감금되어지는 그 지옥에 함께 수용되어지는 것이다.

그곳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아비규환의 고통의 소리가 쉼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잘알아야 한다.

우리가 범죄를 지어서 가는 곳이 지옥이 아니다.

지옥은 말그대로 감옥 즉 수용소이다.

이곳은 사단과 그의 타락한 천사들이 가는 수용소이다.

 

그들은 그 지옥에서 감금되어 죄가 불로 태움을 당해 묶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은 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불지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단의 편에 사는 삶을 가진다면 그들도 함께

지옥에 떨어져 불로 태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후 이 불의세계인 지옥에 사흘동안 계셨던 것이다.

 

사단은  비록 망했지만 완전히 항복을 안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자기 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세력은 바로 인간이었다.

 

비록 사단은 하나님의 어린양에 의해 짓밟힘을 당했지만 인간 마음속에 선악을 분별하는 자기 중심의 사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매개체로 끊임없이 사단은 인간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어떤 생각들을 흘려주고 있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싶다. 위해서 살아가자. 이렇게 하면 안되지....등등 아주 바른 생각들과 바른 마음 그리고 악한것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물리치기도 하는 그런 선악을 인간마음속에 가지고 있음으로 주님이 심판하러 이땅에 오실 그날까지는 많은 사람을 사단의 편에 서서 살아갈수 있도록 이끌어가기도 하는것이다.

 

우리가 믿고 거듭나서도 순간순간 이러한 죄에 빠지는 것도 바로 우리 마음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선악의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단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기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역사를 해서 이세상에 이전보다 더 심한 더러운 죄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마치 히로시마가 원폭을 받았지만  일본천황이 항복을 선언하기 까지는 원폭을 받았다고 바로 우리나라가 일장기나 신사를 부수거나 찢어버릴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일본은 원폭을 맞고 망했지만  항복을 하고 철수하기까지는 몇날 며칠이 걸려 완전히 물러나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비로서 해방이 실감이 되듯이  사단은 이세상죄를 못박아 버린 십자가로 인해 망해버렸지만 이사실을 보고 듣고도 받아드리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모든 불신자들을 동원해서 또다시 죄악의(사단의) 세력을 회복할려고 마음먹고 있는것이다. 

 

각사람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양 제물로 속죄를 이루었다.

이사실을 듣고 깨닫는 자는 자기 마음에 예수님의 피뿌림을 받아 죄가 영원히 사라진 자신의 몸을 보게되어 더이상 죄로인해 고통과 근심으로 눈물짓는 일은 사라져 버리고 감사와기쁨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죄사함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었다고 어떤이들은 말하는데 나는 아직 자신하지 못하겠다.

죄사함은 말그대로 죄사함이다.

 

물론 하나님앞에 온전히 서기위해서는 날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드리는 이 죄사함의 믿음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될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죄사함은 받았지만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하나있다.

 

죄사함은 받았지만  우리가 또 다시 생활속에서 죄를 짓거나 발견하면 또 넘어지고 만다.

그렇게 될때 또 혼동을 느끼며 도대체 이게 어찌된일인가? 왜 다시 사단이 주장하는 이전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있는가 하고 절규하게 된다.

 

그러면 또다시 내가 이 죄를 씻기 위하여 주님앞에 회개하며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자기 중심의 옳다고 여겨지는 소리를 내게 된다.

그것은 절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가를 그 이유를 알아야한다.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이 왜 꼭 이루어야만 했는지 그 사실을 알게되면 비로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게되어 진정으로 거듭난자가 되어 하나님앞에 담대히 설수있는 믿음을 갖게 되는것이다.

 

*롬8:1-2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셩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부활의 의미를 보자?

일반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것을 부활이라고 한다.

그렇다. 다시금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무엇에 대한 부활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새로 태어날수 있는것인가?

오늘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몰라 평생을 갈급하다 사라지곤 한다.(요3장 니고데모)

 

단순히 눈에 보이고 확인되어지는 육체의 생명에 대한 의미가 아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옛자아 즉 죄에대한 자유와 해방(매이지 않고 벗어남),그리고  하나님앞에 담대히 설수 있는 거룩함과 의로움(새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다른말로 말하면 거듭남이라고 할수있겠다.

  

우리믿는 자들이 이미 나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받았드렸다면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미안한 소리지만 지금 죽은 존재이다.(롬6:2-11, 롬8:10, 갈2:20, 갈5:24)

 

우리가 볼때는 살아있는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때 세상끝날까지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죄와 불법을 다 가지고 갔기때문에 우리들도 모두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까지 다 십자가에 못박아버린 감금된 상태여서 죽은 존재인것이다.

 

죽은 존재는 부정하기 때문에 그러한 몸으로는 하나님앞에 절대로 갈 수 없다.

죄에 대하여 죽은 존재는 죄값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거룩한 하나님앞에 설자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번째 열매가 되심으로 죄가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앞에 다시금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이 항복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죽음만큼은 해결할 수 없는 사단의 마지노선인데 이 죽음마저 예수님께서 정복하여 부활하게 되시자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이제는 마지막날 세상을 심판할 그날만을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들도 주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아 우리의 모든 육체와 그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면 그대로 있으면 안된다.

 

주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는 자들은 그리고 그 사실이 믿어지는 자들에게는 자신들도 주님처럼 거룩하고 의롭게 되어진 모습으로 하여금 하나님앞에 부끄럼없이 담대히 설수 있게 되는 부활 즉 거듭남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서 자신이 죄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믿음에 의해 거듭난 자신의 모습을 볼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기쁨으로 나갈수 있게되는 담력을 얻게 되는것이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상의 겸손이다.

하나님이 하신일을 믿고 받아드리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마음에 두려움이나 부담이 없이 하나님을 뵈올수 있는 거듭남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서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다. 

 

비록 내 생활에서는 육신의 감정적 반응에 의해서 자주 넘어지고 하지만 부활의 사실을 듣고 거듭남의 은혜를 갖게되면 더이상 우리는 죄로인하여 마음고통당하는 아픔을 겪지 않게된다.

 

그 이유는 그 죄가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닌 사단이 저지르는 것이니 만큼 자신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감정을 이용하여 넘어뜨리고 범죄를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단을 물리칠 능력을 얻게된다.

부활의 신앙은 이처럼 너무도 중요하다.

 

이 부활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모든 신앙도 믿음도 다 헛것이 되고만다.

그러기에 다시금 하나하나 정리를 해보아야 한다. 

 

두번째로

 

 그런데 왜 하필 사흘만에 부활했을까?

죽음후 바로 부활할수도 있고 하루나 이틀도 있고 혹은 좀 시간이 걸려서 완전히 썩어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1년이나 2년이 지난때에 부활할수도 있을 터인데 왜 하필이면 사흘만에 부활했는가이다.

 

한예로 의학계에서 사람이 죽으면 눈에 보이는 육신의 죽음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완전히 죽었다라고 법적으로 공포하는 것은 의학계에서 대략 사흘이 걸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루나 이틀만에 다시 살아날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죽었는데 관속에서 소리를 내며 다시 살아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사람이 죽어 사흘이 되면 죽은 시신은 물에차서 몸이 부푸러 오르고 코나 눈,귀에 물이 흘러 나온다.

 

그리고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때가 사흘째 되는 시점인데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인간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되어져서 무덤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사람이 죽으면 보통 사흘장으로 지내게 된다.

사흘장을 치르고 난뒤 시신을 묻는다든지 화장을 하게된다.

처음 하루나 이틀은 평소에 입었던 고운옷을 입히고 혹여나 살아날것에 대한 기대감도 안고 지낸다.

 

그러나 몸에 물이차고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염하는 사람이 와 시신을 묶고 관에다 넣게 되면 그제서야 죽음을 실감하고 다시 보지못할것에 대한 슬픔과 절망감에 오열을 터뜨린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값을 사망으로 정해 놓으셨으므로 사망으로 완전히 판명되는 이 사흘째 되는 날에 즉 죽음이 완전히 인정되는 그날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친구인 나사로가 죽음을 당했다.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나사로가 운명하기 직전 주님의 고침을 받기위해 사람을 통해 기별을 띠웠지만 주님은 즉시로 가지 않았다.(이 때가 나사로가 운명했다)

 

  그리고 이틀을 더 유하였다가 나사로가 완전히 죽은지 사흘째 되던날에 그때 예수님은 우리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하시며  깨우러 가자고 하였다(요11:11)

그리고 하룻길 걸려 도착했을때는 이미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 되었다.(요11:17)

 

다시 정리해보자 이는 나사로에게 갈 수 있는 시간이 하룻길만에 갈수 있는 거리이지만 기별꾼이 하루에 걸쳐 달려올때 나사로는 이미 이때 죽었고 기별꾼의 말을 듣고도 곧바로 오지 아니하시고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다.(요11:6)

 

그리고 죽은지 사흘째가 되어 예수님이 움직여셔서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하루만에 가신거리를 환산해보면 나흘째 된다.

그렇다. 나사로의 죽음은 기별꾼이 출발할 그 이후에 바로 죽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이 볼때 숨이 끊어져 죽은것이 확인된 나사로 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사흘이라는 죽음이 확증된 날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은 이틀동안을 더 그곳에 계셨다가 이제 정말 완전히 죽었구나 인정되는 사흘째에 나사로가 누워있는곳으로 하룻길걸리는 곳으로 갔던 것이다. 

 

예수님은 베다니에 도착되자 이미 나사로는 무덤에 갇힌지 나흘째가 되었고 누구도 살수 없다는 절망감이 마리아와 마르다 마음을 짓눌려 있을때 주님은 그때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록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가졌고 그 죄값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인 불쌍한 인간들이지만 예수님께서 그 죄값을 담당하셨다. 즉 대신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이 완전히 인정되는 사흘이라는 기간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이후로 죽음이라는 완전한 판결을 받기까지는 사흘동안 죽음(지옥)이라는 감옥에서 계셨던 것이다.

즉 사흘동안 인간의 죄로인한 옥고를 치르신 것이다.

 

사흘동안 죽음에 있을수 밖에 없는 성경구절

*마12:38-40, (눅11:29-3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계11:9,11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두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 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주님께서도 사흘후 인간의 죄를 대속한 사망의 기간이 완전히 이루어져 그 죄값이 다 치르고 나자 더 이상 죽음(지옥)이라는 감옥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출소라는 부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부활은 표면적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부활은 죄값을 다 치른 상태이기 때문에 죄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자유인이 된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무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죄값대로 형량을 다치르고 난 법적인 깨끗한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법을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와 죄값에 따라 감옥에 간다.

감옥에 간 자들은 말 그대로 자기의지대로 살지못한다.

오직 간수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움직일뿐이다.

 

그러나 그 형량을 마치고 나면 그는 죄값을 다치룬 자유인이 되어 해방을 누리게 된다.

비록 이전에 지은 그 죄책감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이미 죄값을 다 치룬 상태이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 죄로인해 다시 감옥에 갈 일 이 없다(일사부재리의 원칙)

그래서 그는 자유롭게 살수가 있다.

 

비록 호적에는 죄가 쓰여져 있고 빨간줄이 그어져 있어서 전과자라고 불리우지만 오히려 그 빨간줄의 의미는 법적으로 죄의 값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엄청난 죄는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나대신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시기까지 사흘동안  죽음의 감옥(지옥)에서 가 계셨다.

 

왜 지옥에 계셨는가?

인간이 저지른 죄값에 따라 대신 지옥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 누구든 그 죄값을 분명히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것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오신것이며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신분으로 죄인의 이름으로 죄값으로 죽으신것이다.

 

죄값으로 죽으셨다면 이제 그가 있어야 할곳은 죽음으로서 죄값을 다 치뤘기 때문에 당연히 강도에게 말한것처럼 주님을 소망하는 자들이 모여있는 낙원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아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시기 까지는 육체의 죽음이 완전히 선언되어지는 이 사흘이라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이 사흘이라는 기간안에 영으로서 낙원에 계시면서도 지옥을 마음대로 가실수 있는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신것으로 보고 있는것이다.(눅23:43, 벧전3:18-19)

 

왜냐하면 주님은 기름부음받은 자였고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예언한대로 이땅에 메시야가 오셨음을 분명히  알려 주를 부인한 그들로 하여금 반론을 재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벧전3:18-19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니라

 

이제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하는 점이 문제이다.

주님은 죽음으로서 세상죄의 값을 다 치렀다.

(행위의 죄가 아니다.

세상죄는 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 하나님을 떠난죄를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건 그 어떤 선한행위든 그것은 전부 죄의 행위가 되고 만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이 판단하는 죄는 자신의 어리섞은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범죄하였기에 그것이 죄가 되어 지옥에 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주님이 판단하는 세상죄는 사람들이 범죄한 그 행위를 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심어논 선악을 아는 죄로인해 그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메시야인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어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중요: 요16:9)

 

그래서 우리주님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사람들의 세상죄를(선악을 아는 열매로 인해 사단에 의해 지배를 받아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진 상태) 지고가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근본적으로 죄로 인해(사단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던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금 화해와 회복시키는 속죄의 제물이셨던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은 인간이 저지른 범죄의 행위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로말미암아 나타나는 죄의 열매, 즉 허물들인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떠나게 된 근본 틀어진 부분을 바로 세우면 모든 악한 행위나 범죄들은 자연히 해결되실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세상사람들의 행위의 죄로 인한 죄값을 치르기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거나 그 죄값을 받기위해 3일동안 일시적으로 지옥에 가셨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었던 구약의 사람들에게 약속한 메시야이심을 보여주시고 전파하시기 위해서 지옥에 가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죽었던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한 메시야가 바로 자신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지옥에 가셔서 전파하시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다시 보도록하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니라

 

이 내용은 주님의 영에 의해서 지옥에 영혼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듣는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후 구약의 영혼들이 다시금 지옥에서 풀려나오는지는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뜻은 오시리라고 한 구세주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란 것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그들이 부인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지옥의 영들에게 가서 증거한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런관점에서는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치뤄셨다는것과 그후 심판이 아닌 지옥에 있는 구약의 영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거하기 위하여 지옥에 가 계셨다는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주님이 세상죄값을  다시금 치르기 위하여 죽어서라도 인간의 저지른 행위의 죄를 갚기 위해서 지옥에서 사흘간 고통을 받는다는것은 성경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말씀하신대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자연히 해결되어지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주님은 낙원과 지옥을 마음대로 오가실수 있는 권세를 부여 받았음으로 얼마든지 낙원에서 강도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려볼수 있고 동시에 지옥에 가셔서 주님을 부인한 자들에게 자신이 말씀의 약속대로 이루신 메시야 이심을 증거해볼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전 육체의 죽음을 가지시 영이라 아직 하나님앞에 올리우심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려면 주님은 지옥에서 살아있을때 주를 부인한 모든 영들에게 메시야 이심을 보여드려야 했다. 

 

 

그리고 부활하셨을때 죄값을 다 치른 자유의 몸이 되었으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죄값이 끝난 자유인의 선언을하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새삶을 살아가게 하는 표가 되어 하나님나라에 나아갈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붉은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빨갛게 (붉게) 덮혀 버려서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앞에 다시금 불안해 떨 필요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은혜의 법적 차원에서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안하시게 되어지는 것이어서 하나님앞에 담대하게 나아갈수가 있게 된다.(히10:10)


하지만 이모든것을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이는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예수님이 모든 죄값을 치뤘는데도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죄사함의 구원은 물거품이 되어 우리는 영원히 잠자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고전15:12-19)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될수 밖에 없으며 주를 믿어야 할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부활은 반드시 있는것이며 하나님의 뜻인것이다.

 

부활의 신앙은 하나님앞에서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여길수 있는 새언약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너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중심부분인것이다. 

 

물론 성경에 보면 모든 사람들의 부활도 있다.  

여기에 보면 불신자들의 부활도 있다.

 

*행24: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죄가 마음에 그대로 안고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 죄값에 따라 심판을 받아 유활불못에 던지우게 된다. (계23:13-14)

 

그러나 성도의 부활은 이미 우리의 모든죄를 주님께서 가져가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다 죽은것임을 붉게 칠해 놓았고 이를 믿는자는 함께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죄가 남아 있지 않아 거룩하고 의로운모습으로 죽음의 감옥에서 있지 않고 의의 나라인 하나님의 세계로 이끌림을 받게 된다.


여러분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법에도 형량이 다 마친 사람은 감옥에 그대로 둘수 없게 되어있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죄값을 다 치뤘는데도 감옥에 있게 했다고 하여 직무유기가 되는 것이며 그 간수가 대신 법에 따라 조치를 받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단도 막아서지 못하는 자유의 몸이 되어진 것을 믿는다.

문제는 믿는 모든자에게도 이와같은 은혜의 혜택을 입게 된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주님이 나대신 못박혀 죽으셨으니 그를 믿는 나도 주님과 함께 못박혀 죽은 몸이 되었다.

그렇다면 주님이 부활했을때 주님 혼자만 부활했겠는가?

아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의 권세가 나를 해하지 못한다는 믿음의 은혜를 갖게되어 나를 자유케 하셨다는 사실을 감격적으로 받아들여 자유와 기쁨속에서 죄가 하나도 없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거듭나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부활은 거듭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주안에서 자신을 바라볼때 나는 죄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앞으로도 영원히  예수님의 보혈을 뒤덮고 의롭게 살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안에 죄가 사라진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주안에서 의롭게 되어진 자신을 바라보고

주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진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게 부활이며 이게 거듭남이다.




세 번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마리아가 만지려 하자 왜 만지지 못하게 하셨을까?

(요20:17)

 

주님은 인류의 죄값을 죽음의 감옥에서부터 다 치르고 나오셨다.

이전 온세상죄를 다 지신 예수님은 죽음의 화살이 예수님한분에게 집중되어 사람들로부터 온갖 고난과 멸시와 매맞음과 죽음을 당했다.

그것이 죄를 가진자의 받을 당연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죄의 값을 다치르시고 부활하셨을때 비록 몸은 죄값을 치른 흔적으로 못자국이 나있지만 다시금 창세 이전과 같은 완전한 깨끗이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셨다.

 

때문에 다시금 죄가 없는 의롭고 거룩한 몸으로 변화되었다.

세상죄를 지셨을때는 죽음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지만 죄값을 치르고 부활하셨을때는  하나님앞에 담대히 나아갈수 있는 의의 첫열매가 되셨다.


천국은 어떤 곳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천국은 죄가 하나도 없고 의로 가득한 나라이다.

(찬송가: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자 뿐이라.....)

 

그러기 때문에 죄인들은 물론이고 죄가 눈꼽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는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 께서는 죄 그자체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뵈오려면 바늘끝만한 죄도 없어야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죄가 우리 마음에 묻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에는 바로 저주와 멸망이 되어 쫒겨날 뿐이다.

 

그러므로 죄값을 다 치르신 우리 주님께서 다시금 죽음에서 부활하셨을때는 그 몸에 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에 있을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부활(출소)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마리아가 반갑고 기쁜나머지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다고 해보자......주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 일지라도 육체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더럽고 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을 만지는 순간 부정하게 되어 하나님이 보실때는 예수가 인류를 위한 대속적 죽음이 완전히 갚아지지 않은 것이 되어 예수는 죄가 남아 있는 부정한 모습이 되어 속죄의 무효가 되어 버리고 만다.   


죄는 언제 다 갚아지는가?

그것은 재판관의 선언에 의해 정해진 기간을 감옥에서 다 치르게 되면 감옥소장으로부터 행정상의 절차와 약간의 훈시를 들은후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그는 자유인이 된다.

 

날짜만 채웠다고 해서 임의대로 감옥을 빠져나오거나

자기 마음대로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을 아무나 만나면 자숙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을때는 죄명을 또 뒤집어 씌어서 사회생활 부적격자로 내몰아 계속 감옥에 있게 하는 것이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예수님은 사흘 동안 세상의 모든 인류의 죄 값을 다 치르고 나왔는데도 만약 허물 많은 인간이 주님의 몸에 손을 대었다면 그 몸은 부정을 입게되어 더러운 죄의 흔적을 갖게 된다.

 

*레18:22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레18:32

-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인하여 죄를 지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죄는 육신이 살아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 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고 하지만 부활후 예수님이 육신에 의한 자들에 의해 손을대어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때 부정을 입게 되어 아직 완전한 사망의 죄 값을 다 치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 진노의 저주를 받게 되어 구속의 무효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이 죽음이라는 죄 값을 다 치르고 인류의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 졌다는 것을 하나님의 보좌앞에 우선적으로 자신의 정하여진 몸을 보이러 갔다와야 하는 것이다.

(요20:17하반절)


그러므로 부활 후에 예수님의 손 과 발의 못자국과 변화된 거룩하고 깨끗한 모습은 바로 우리 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하나님앞의 영수증이 예수님이 되는것이다.


이 후 인류의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 졌음을 하나님 보좌 앞에 갔다 오고 난후에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제자 도마에게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다(요20:27)

또한 제자들과 함께 직접 음식도 먹었다.(눅24:30)

 

또 나를 만져보라고 하셨다(눅24:39)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셔서 그 앞에서 잡수시기도 하셨다(눅24:42-43)


이로보건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앞에 다녀오신 후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제자들과 사람 앞에 나아와 보이시면서 의심하는 도마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시면서 확인시켜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은혜의 법이 완전히 이루어지는순간 그 후 부터는 우리는 너무도 공허감이 들 정도로 주님은 다시 원래의 모습과 같이 평범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생선 한토막을 먹는 주님의 모습에서.....눅24:42-3))



네 번째로

 

부활후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난해한 부분이기도 하다.

주님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시고 변화 되셨을까?

우리도 부활하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

 

많은 사람들은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하게 되면 마지막 때의 그 모습으로 아름답게 변화되어 부활하지 않을까?

그래서 같은 교회, 같은 믿음의 식구들을 알아보고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낼날을 꿈꾸어 왔다.

 

그러나 부활후 변화된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얼른 쉽게 알아보는 그런 형체 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른 이상한 모습으로 바뀌어 지는 것도 아니다.

 

처음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마리아와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우리주님은 부활하시고 난 뒤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는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았다고 하였고(요20:15)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이지만 당황해 하는 그들에게 못 박힌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자 그제 서야 주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고(요20:20)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주님도 동행했지만 알아보지 못했다(눅24:16)


이처럼 우리들도 분명히 몸은 같은 몸이지만 변화된 몸은 우리가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남들이 쉽게 식별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 예로

우리는 부활 후 변화된 모습을 송충이나 배추벌레를 통해 배울수 있다.

나비가 나뭇잎에 알을 깠다.

그들이 수정되어 세상에 나온 처음 그들의 모습은 징그럽고 추하게 생긴 구더기나 송충이 누에고치와 같은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가장 징그럽고 혐오스럽게 생긴 모습이다.

항상 땅이나 나뭇잎에 기어다니고 나뭇잎이나 그 외 수액을 빨아먹고 산다.

그런데 이런 기어 다니는 송충이나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어느 날 허물을 벗게 되니 그 안에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이 생겨났다.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가 생겨진 것이다.

 

날개를 움직여 날아보니 어느덧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세상곳곳을 여행하는 아름다운 곤충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들의 먹는 음식도 이전에는 땅만 보며 잎이나 흙을 먹고 살았지만 나비가 된 지금은 아름다운 꽃을 찾아 꿀을 먹는 존재로 바뀌어 진 것이다.

하나의 곤충이지만 태어날 때 와 날아다닐 때 의 모습은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이 되어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모습은 한 분자 구조가 같은 물이지만 온도에 따라 수증기가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물의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얼마든지 다른 모양으로 자신을 바꾸어 드러내는 것이 바로 변화된 모습인것이다.


 예수님은 그럼 왜 부활해야 했을까?

다시한번 정리해보자.

그것 역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 목적은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무슨 말인가?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죽어있는 존재밖에 안된다.(고전15:17-18)

 

비록 죄 값은 죽음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그 죽음의 상태에서 영원히 잠자는 망하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고전15:14)

 

즉 부활(출소)이 없으면 그 죽음의 상태에서는 계속 감옥에서 죄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죄 값에 따라 형량을 마치고도 출소하지 못하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다른 범죄가 감옥 안에서 저질러졌다든지, 아니면 간수를 폭행했다든지 혹은 탈옥을 했다든지 혹은 감옥에서 사람을 죽였다든지 해서 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만약 우리주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이는 아직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한 그 죄 값을 완전히 다 갚지 못한 결과이다.


하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망이 확정되는 그 순간 인간의 죄 값은 다 치러진 것으로(갚아 진 것으로) 여겨 새 언약의 은혜의 법에 의해 죄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의롭게 되어진 자가 되어 주님은 사흘만에 부활(출소)하신 것이다.  

 

만약 사람이 죄 값에 따라 형량을 마치고 출소하면 어디로 가겠는가?

제일먼저 가는 곳이 바로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안식처인 자기집의 가정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제일먼저 가야할 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가야만 했고 하나님을 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죄 값을 다 치러서(죽음) 이제 저는 출소하여 새롭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라고 죽음에서 부활한(출소한) 자신을 보여야만 했다.

 

그 증거로 죄 값을 대신한 손과 발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 을 보여야만 했다. 

예수님의 이러한 깊은 사랑에 의하여 주님을 의지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도 주님과 함께 거룩하고 의롭게 되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이요

주님의 부활하심이 바로 우리자신이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나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은혜의 법에 의해 거룩하고 의롭게 되어진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다.

 

그처럼 우리 인간들도 우리 영혼의 안식처린 천국에 가려고 한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여 함께 부활하여 (출소-즉 죄와 사망의 죽음에서 벗어난)거룩하게 되어진 자신의 몸을 확신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활은 단순히 우리가 천국에 가기위해서 예수님을 믿어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하고는 그 의미가 다르다

믿는다라는 것 ...........

 

예수님의 무엇을 믿어야 하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며 왜 부활하셨는가를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비로소 우리는 신앙의 고백을 할수 있게 된다.


아무리 우리가 예수를 믿고 수십년 동안 교회생활을 하여 귀한 직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죄의 가책과 고통이 있어 하루하루 남몰래 눈물지으며 용서를 구한들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주님께서는 또다시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받아주시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용서의 고백 자체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정면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 죄를 영원히 씻어 놓았는데 우리가 또다시 범죄를 저질러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죄 사함의 능력과 은혜를 자기 마음에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노력으로 자기 마음이 용서받았다라고 확신을 느낄 때 까지 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은 자기 마음과 느낌을 믿기 때문에 주님이 이루신 그 은혜의 역사를 실제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론으로만 알게 되는 지식인만 될 뿐이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은 주님을 아는 사람은 될지언정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신앙은 단순히 죽음에서 살아난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의롭게 여겨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여서 예수님처럼 죄가 하나도 없는 의로운 사람(의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겨 주시는 것이다.(롬10:10)

 

*롬3;24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롬3;26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4:5

-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은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5:18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5:19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즉 한마디로 내 죄가 완전히 사라진 깨끗한 존재임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인 것이다.

*롬8:9- 만일 너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렇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값으로 인해) 영원히 죽음의 깊은 잠에 자지 않도록 깨어 천국에 갈수 있도록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게 그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 부활의 소망을 가져서 부활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의 마음에 죄가 남아있거나 죄의 가책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그는 주님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자가 되어 그 죄가 그대로 그 마음에 남아있어 불의한 자가가 되어 악한자가 거하는 불못에 떨어진다.


계시록에도 믿는 자의 부활뿐만 아니라 악한자의 부활도 있지 않은가?

믿지 않는 자도 언젠가는 부활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심판의 확정하는 날이 그날 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신앙은 단순히 죽음에서 살아난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여겨 주신다.

 

다른 말로 말하면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신앙이다.


우리가 이러한 부활신앙을 갖게 되면 우리가 완전히 의롭게 되어져서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더라도 거리낌 없이 담대하게 감사와 기쁨으로 영광으로 대면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마음에 내가 남몰래 지은 죄로 인해 숨기거나 고통을 느끼면 이는 부활신앙이 없는 것으로 여겨 (이는 주님께서 의롭게 되게 해주신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결과) 그 죄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바깥어두움에 내어 쫒기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주님의 부활신앙은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는 인증서와도 같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내가 이제 죄가 하나도 없는 의로운 자가 되었다”라고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감격과 기쁨의 순간이다.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다고 해서 절대로 죄 안짓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든가 혹은 죄 안짓는 사람이 되기위해 완벽한 삶을 살아라는게 아니다.

 

물론 의롭고 거룩하다는 말의 의미가  죄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상태를 의미하고 죄를 한번도 짓지 않는 올바른 삶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자신을 볼때는 의롭다 거룩하다라는 이 말씀이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는 말그대로 더럽고 악한자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의롭고 거룩하다는것은 말그대로 믿어서 의롭게 되어진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내 행위나 내공로가 전혀 들어가 있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중에서 최고로 선하게 살아왔던 날을 뽑아서 나를 나를 의롭게 내세우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순간 우리는 사망의 저주에 빠진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의 조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데  그 외부의 조건이 바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그렇다면  의롭게 되는 조건이 우리가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면 죄를 마음껏 저질러도 된다는 뜻인가?  

 

물론 그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우리의 모습은 믿기전 세상죄악에 거할때나 믿고 거듭났을때나 늘 부패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만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악한 존재이기 드러나기 때문에 영원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안고 죄에 대하여는 철저히 절망하면서 어느 것 하나 나를 바라봐도 기댈 것 없는 무능한 자기자신을 바라보면서 오직 주님의 이끄심만을 철저히 바라고 바라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회개란 의미를 두가지를 동시에 다 받아드리고 사용했다.

 

첫째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죄인이었고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눈물로 주님앞에 나아가 예수님을 영접했을때 회개하여 예수믿었다고 한다.

이때의 회개는 마음의 돌이킴 방향전환을 의미한다 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기는 역사가 있다.

 

둘째로는 예수님을 믿고 칭의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속에서 죄와 허물이 나올때 죄책감과 고통으로 다시금 주님앞에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회개를 이와같이 믿기전이나 믿고난후 주님앞에 나와 죄의 용서를 구할때 회개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첫번째의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를 통해 그 마음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보혈의 의로 모든 죄악을 안개와 같이 사라지게하는 십자가의 은혜안에 우리를 이끄셨다는 것이다.

이제 그몸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의 의의 옷을 입은 자녀요 자신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녀요 성령의 전이 되어 거룩한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는 주님을 믿은자가 다시금 회개를 한다는 것은 언어적 뜻에 있어서 맞지않는 꼴이 되어버렸다.

회개란 말그대로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의를 가진자가 회개를 한다면 말의 본질에서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파의 주장과 상통한것입니다.)

 

그러나 우리한국교회는 회개를 사단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돌이키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범한 범죄의 돌이킴을 주안에서 이루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두번째내용 역시 믿는 자가 회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다시금 내가 죄를 지어 이전에 믿는것이 가짜였으니 이제부터 진짜로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믿은후에도 자기 육신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습관적 범죄나 허물을 돌이킨다는 뜻에서 회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영원한 용서를 하셨는데 믿고 난후 다시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주님이 사해주지 않아서 불안하여 계속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지은죄로 인하여 그 죄가 하나님과 나사이를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주님 영원한 당신의 사랑으로 이 관계가 다시 회복하는 차원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조심해야 될 내용이다.

왜냐하면 회개역시 하나님이 우리마음을 감동시켜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죄를 지을때 마다 회개한다고 하면 용서를 구하면서 자기 의지로 안하면 안할수 있다라고 하는 과신이 드러나는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회개를 하지만 그생활에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성령의 힘을 의지하지않고 잘못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의지로 결단하고 용서를 구하는 잘못을 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회개라는 단어가 두가지 일에 다 사용한다고 해서 크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생각의 차이지 단어글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도 없이 회개란 말을 계속사용하면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영접없이도 자기실수와 허물에 대해서는 회개를 해버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은채 불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꼴이 되고만다.

 

그래서 예수믿고 거듭난자는 또다시 육신을 통해 죄를 범했을때 우리는 이렇게 넘어질수 밖에 없는 자임을 솔질히 자복하여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자세로 돌아선다.

이것이 예수믿은자가 다시금 죄를 범했을때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 주님앞에 불신자로서의 회개가 아닌 믿는자안에서의 통회자복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회개= 하나님 이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사단의 지배하속에 살아왔음을 알아 죄와 멸망으로 이끄는 사단의 길을 버리고 날구원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께로 갑니다.

=회개는 돌이킴, 가던길을 되돌아간다는 의미. 단한번 고백)

 

(자복과 통회= 하나님 나는 주를 믿고 의지하여 거듭나서도 이렇듯 세상육신에 길들여져있는 저 이기 때문에 악하고 어리섞은 죄악된 짓을 어제도 오늘도 계속 저지를수 밖에 없는 부끄러운자 입니다.

 

=자복과 통회는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겨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항상 늘 바라보는 자세이다.매일 숨쉬듯이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 보통일반 성도들은 사람들은 이것을 회개라고 표현함

 

이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예수믿고 다시금 회개를 한다고 말을 해도 별로 이상할것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단의 자녀에서 돌아설뿐만 아니라 죄의 길에서도 돌아설수 있는 믿음의 의지를 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의 세계안에 산다는 뜻이다.

믿음의 세계안에 산다는 것은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것들에 대한 무익함을 알고 관심을 두지 않는 다는 뜻이다.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것들에 대한 의미나 관심이 사라졌을때 우리는 주님안에서 살게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체는 세상안에 공존하며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의한 범죄나 허물이나 실수는 늘 뒤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물론 선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을 믿고 받아드린 순간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을 떠난 믿음의 세계안에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서 거듭난 새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라도 우리의 육신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이 육신이 요구하는 어떤 생각들에 의해서 올바른 삶을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험과 올무에 빠질때도 있는가 하면 말한번 잘못하여 싸움이 날때도 있으며 올바르게 산다 할지라도 자신에 의하여 피해를 당하여 근심에 빠질수가 있게 되는것이며 순간 육신의 정욕으로 음란한 행동을 하기도하며 도둑질도 하기도 하며 살인도 범할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모든것은 믿고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육신에 의하여 드러나고 있는 삶의 모습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세상에서 관심을 두지않고, 또는 의미를 갖지 않고 살아갈때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정치,경제, 문화, 삶, 도덕, 윤리, )에 대해서는 우리는 주님안에서 전혀 요동하지 않고 믿음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서 여전히 허물이 나타나고 있는 문제일지라도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벗어난 믿음의 삶(주님안에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다라고 하는것은 이런 육신에 의하여 드러나는 행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에 의하여 (내 죄가 주님께로 다 가져갔음을 믿으며 죄와 사망에서 날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의롭다라고 거룩하다고 듣게 되는 것이다. 


비록 나는 육신에 매여 하루하루 늘 범죄가 뒤따라오고 범죄를 저지르고 실수를 계속하지만 이 부활신앙을 갖고 살아갈 때 내 행위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이 나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나는 빠져버린 상태여서 주님을 믿는 이후부터는 내가 사는 삶이 아니라 내안에 성령이 나를 의로 이끌어 가시고 사단은 죽은 내 육체를 가지고 늘 범죄로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죄를 범할 때 마다 내가 이런 죄를 범했으니 죄 용서해달 라고 또다시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을 때 까지 더러운 육신의 옷을 입고 입기 때문에 늘 사단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고백하면서 이미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만을 계속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긍휼을 구해야 하는 것 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은 늘 어리섞고 약하기 때문이다.

 

사단은 우리의 육신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는 우리가 범죄 했다고 항상 마음의 양심에 고발하고 우리가 죄책감으로 넘어지기 바라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해서 내가 짓는 죄인 것 같아도 여러분 놀라지 마라 그 중심에는 전부 사단이 조장하고 있다.

 

내가 말하고 내가 행동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도 항상 그 중심부에는 사단이 늘 등장하고 있다.((삼상18:10-11, 욥1:12, 마4:1, 막16:23, 눅22:3, 눅23:34, 요13:2, 요13:27, 행5:3, 롬7:17,20)

 

 

모든 죄의 실체가 사단에게 있음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해보자 

(사14:12-20=사단의 실체)


*창3:1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사단이 계획적으로 사람인 하와에게 접근함.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어떤 생각을 집어넣기 위한 것임 어떤생각인가? 자기 중심적 생각을 말한다.)

*삼상18:10-11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에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대상21:1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욥1:12

- 여호와 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 가니라

*마4:1

-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3

-....시험하는자가....

*마4:8-9

-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이세상은 자기 것임을 보여줌 고로 세상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결국 사단의 행위와 사단의 일이 되고 만다.)


*눅4:5-6

-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막16;23(막8:3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자기중심적 생각이나 옳음, 또는 의-사단의 조종)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눅22:3

- 열둘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사단이 가롯유다에게 들어가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죄를 짓게함)

*눅23:34

-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그 배후에 사단이 조종하고 있음을 알려줌)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여기 드러난 유다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유다속에 들어간 사단에게 말한 것 임을 알 수 있다.)

*행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거듭난 이후 또 다시 죄를 지을 때는 무엇인가? 나는 죽었으니 예수님이 죄를 졌는가?

*롬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롬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사단-자기의)니라

*롬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사단, 자기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기전이나 믿고난 이후의 지었던 죄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어린양 희생제사로  영원히 용서함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죄도 역시 나를 멸망에 넘어뜨릴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한다.

그리고 믿고 난 이후의 모든 죄도 내가 짓는게  아니라 내속에 거하는 죄의 실체인 사단이 죄와 타락의 마음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 “사단이 그랬다”라고 확신을 갖고 고발해야 한다.

 

그래야 물러간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정죄하지 아니한다.(롬8:1)


여러분중에 남몰래 음란한 짓을 하는가?

여러분중에 남몰래 손버릇이 나빠 도둑질을 하는가?

여러분중에 교회헌금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대어 가책을 받고 있는가?

여러분중에 성질이 고약해 험한욕을 하고 살아가는가?

놀라지 마시라 죄와 범죄는 사단의 몫이다.

내가 하는 것 같아도 주님을 믿고 십자가에 나도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후에 이런 범죄들이 계속 나타나도 그 죄로 인해 눌리지 않는다.


여러분 거듭난 사람이 죄 안짓고 사는 줄 아는가?

모르긴 몰라도 이전과 거의 같이 실수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죄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은 죄의 실체가 어디있는지 알았고 누가 범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눈에 보이는데로 내가 범했다 하면 그사람은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항상 주님앞에 긍휼을 구해야 하는 것 이지만 그 죄의 실체는 내가 아니라 사단이었음을 늘 잊어서는 안된다.

 

나쁜습관, 나쁜행동 음란한짓.....이 모든게 사단이 우리의 육신을 이용해 일을 저지르고는 슬그머니 물러난다. 그리고 우리보고 책임져라고 양심에 계속 고발한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이 뻔뻔 스럽다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이런 확신을 항상 갖게 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하루도 못가서 사단에 의해 패배 당하고 만다.

 

그리고 자기를 정죄하며 세상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나는 매일같이 죄를 범한다.

하루도 범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내 육체가 원하는 정욕에 의해 스스로도 죄를 짓지만 내 생각에 의해 하나님을 거스리는 온갖 공상들로 늘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뿐만 아니라 나로 인해 시험든자 손해본자, 나로 인해 같이 올무에 빠진 자 등등을 보게 되면 온통 하루가 죄 속에 파묻혀 사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주님이 있다.

영원히 변할수 없는 구원의 은혜의 주님이 계시기에 주님은 항상 나는 이미 너를 용서했다라고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이 부활 신앙이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라 비록 어제도 오늘도 실수와 허물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자신이지만 믿음안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면  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의롭게 되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통해 드러나는 행위를 보면 안된다.

나와 내 모든 것들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있는 상태다.

죽은 자는 그 무엇도 행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죽은것이다.

 

사단은 죽은 나를 이용해서 옳은 일도 하게 만들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든지, 죽은 나를 이용해서 옳지 않은 범죄를 일으키게 만들어 스스로 정죄하고 내 힘으로 스스로 고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감있게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스스로가 살아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모든 것에서(잘한 것이든 범죄를 저지른 것이든) 우리가 영광을 받고 우리가 책임지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못박혀 이미 죽은 자이다.

죽은자는 말도 하지못할 뿐더러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 어떤 생각도 나타 낼 수도 드러낼 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이 내안에 들어와 나를 대신하여 살아주시는 것이다.

이런 죽어진 자신을 먼저 발견해야 그다음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의 신앙을 가질수 있게 되는것이다.

죽지 않고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부활신앙에 동참할 수가 없다.

 

죽은 자라야 만이 그 다음 날 위해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면 죄가 다 갚아진 주님이 부활(출소) 하셨듯이 우리들도 죄에 대하여 죽었지만 주님의 부활로 인해 함께 부활(출소)되어져 비로소 죄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새사람(거듭남)이 되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은혜의 법아래 살아가는 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잊지말자


첫 번째로

자신이 얼마나 어리 섞고 무능하고 악한자임을 알아서 하나님의 긍휼(용서)하심을 받아야 한다.(회개) 이에 자신은 예수 안에서 철저히 죽은 자가 되어(의지함)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


두 번째로

죄에 대하여는 자신은 주님과 함께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이후의 모든 행위도 이미 육신의 죽은자가 사단에 의해 저지른 것이니 만큼 또다시 죄로인한 심판은 자신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실수와 허물로 인해 이런 자일 수밖에 없는 것을 고백하며 항상 긍휼히 여김을 받는 연약한 자가 되어야 하며(십자가를 바라보는 삶)

사단(죄)에 대하여는 성령께서 해결해주실수 있도록 간구하며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


세 번째로

자기 자신에 있어서는 주님과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진 자신을 늘 인식하면서 주님의 부활로 인해 자신도 죄가 하나도 내안에 남아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이것을 억지로 믿거나 받아들여져서도 안된다.

신앙은 첨부터 끝까지 내가 믿는게 아니라 주님이 믿게 해주시는 것이며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받아들여 질수 있도록 내 마음을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완전히 죽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질 때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되어진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기쁜 나머지 우리는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어진다.

“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난 내 마음에 죄가 사라진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기쁘고 좋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육신의 모든 행동에 옳고 그름을 놓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여러분들의 이전 행위를 낱낱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인하여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이다.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숨기지 말라는 게 아니다.

먼저 질서와 순리대로 행하라는 것이다.

 

자신은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하지만 처음 과정을 무시하고 단지 내가 죄가 사라진 의로운사람 이라고 하면 어느누구들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순서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순서가 있고 듣고자 하는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내가 지옥에 들어갈 흉악한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다음 나의 죄를(사단에 매인혹은 종노릇) 회개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영원한 자유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 주님이 부활하셨는데 이 부활은 우리가 죄로 인해 갈 수밖에 없는 죽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출소하게 되어짐으로

더 이상 내 죄가 내 몸 안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의롭고 거룩한 상태가 되어져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새 언약의 은혜의 법아래 살게 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한 마지막 단계만을 너무 기쁜 나머지 외치고 전하다보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씀이 틀리다고 이단자가 되어버리고 죄가 있는 것을 아는데 죄가 없다고 한다고 하여 귀신 들린 자 라고 하며 회개도 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부활은 출소의 의미와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내안에 죄가 사라졌다고 할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내안에 죄가 사라졌다 라고 말하면 얼마나 교만 된 말일까?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죄가 없어졌음을 뜻하는 영수증이 되었기 때문에 은혜의 법아래 죄가 사라진(없어진)우리자신을 새롭게 발견되어진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의 이름만 불러도 그 의롭고 거룩함에 우리자신의 더럽고 추한 모습에 의해 저절로 두려워 떠는 자가 되었다.

 

그 넓으신 사랑으로 우리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모하지만 한편으로 죄에 대하여 가차 없이 심판하시는 진리와 공의의 법이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죄에 빠져 신음하는 자신을 바라볼 때 마다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은혜의 세계를 몰라 감히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불안해 떨며 죄 범할 때 마다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수천 수 만 번씩 외쳤다.

 

내 죄로 인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맘이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용서해주신 주님의 은혜의 법 앞에서 또다시 죄를 용서 해달라고 하면 그것은 주님을 향한 기만이 될 뿐이다.

 

*히6:5-6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어느 아이가 부모의 돈을 훔쳤는데 가책이 되어 부모앞에 나아와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에 흐뭇하여 용서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신을 용서해준 아버지를 믿지 못하여 언젠가 벌을 내리실것이라는그 의심과 두려움을 품었다.

"오늘은 용서 해주어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생각나면 나에게 벌을 내리시겠지...."

결국 다음날 그아이가 또 그 죄와 죄책감에 눌려서 아버지께 또다시 용서를 빈다면 부모는 뭐라 말하겠는가?

 

한,두번은 들어줄 수 있겠지만 만약 한달 두달 계속 아이로 부터 용서해 달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 아버지는 아이의 정신상태를 의심해서 병원에 데려가지 않겠는가?

 

힘 있고 능력 있는자가 한번 용서해 주었으면 약한자는 그 말씀에 능력에 힘입어 완전히 용서함 받고 살아갈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우리 세상죄를 위하여 영원히 사해 주셨다.

 그 용서의 효력과 힘은 "영원히" 이다.

 

이 영원의 시기는 세상에 사람들이 한사람이라도 있는 그때이다.(아담이후로 주님이 심판할 그때 까지)그래서 우리 주님의 용서는  우리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 지은 모든 죄를 말한다.

이 영원한 세상안에 우리는 20-21세기라는 한 점에 살고 있다.

 

이 점안에서 우리는 늙어 죽을때 까지 착한일도 하지만 허물과 실수로 죄를 짓기도 한다.

주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다아시고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2000년전에 이미 우리와 우리죄를 다 못박아 버렸다. 

 

한마디로 영원히 용서함받았다.

이 은혜의 사실을 믿고 거듭난이후에 짓는 죄도 용서 받았음으로 우리는 롬8:1-2처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유함을 얻은 우리가 어떤일로 순간순간 자신의 죄와 죄책감으로 하나님앞에 두려움을 느껴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그 사실이 불안하게 느껴져서 매일같이 회개기도를 한다면 주님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인류의 죄를 위해 영원한 용서의 표로 십자가의속죄를 이루었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믿지 못하여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같이 용서해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애초부터 십자가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이다.  

 

이런 구원의 은혜와 확신을 위해 성령은 우리를 늘 주님의 십자가로 인도한다.

성령은 끊임없이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이 새언약의 법을 통해 "너의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약속하고 있는 것이다.(렘31:34, 히10:17)

 

그러나 주님이 이런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깨달음과 이끄심을 통해 우리가 이처럼 버려야 할 무가치한 죄들이 버려지지 않고 습관적으로 또다시 육신을 통해 죄를 범하게 될때에는 은혜로 받은 구원을 취소 하는것이 아니라  이 악함을 깨닫고 돌이킴을 받을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히12:5-6

- 내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한번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완전히 못 박았으면 우리도 죄에 대해서 영원히 죽은 것 이고 그 사망의 기한이 차서 주님이 부활되었으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의롭고 거룩한 자가 되어 영원히 의의 열매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우리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뜨거운 감정으로 비롯되어진 것이 아니라 은혜의 법아래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이것을 누릴수 있도록 만들어진 새 언약의 법인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늘 말했다 시피 부활은 죄의 값이 끝났다는 출소의 의미와 같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 값에 따라 형량이 치러진다.

 

그러나 형량이 다 치르고 나면 그는 죄에 대한 값이 다 치뤘기 때문에 죄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비록 이전에 나쁘고 부끄러운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댓가를 이미 다 치뤘기 때문에 자유인이 되어 감옥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이전에 그는 범죄인이 되었을 때는 재판관의 심판에 따라 감옥에 살면서 자신의 신분이나 호적등 주민등록상에 죄명이 기록된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 죄 값을 다 치르고 나면 감옥에서 풀려 나올 뿐만 아니라 호적이나 주민등록상에 기록된 죄를 기록한 글을 빨간 줄로 긋게 되어서 죄 값을 다 치른 자유인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더 이상 그는 그 죄에 대해서 벌이나 죄 값을 치를 필요없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하나님앞에 모두 죄인들이다.(롬3:23)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죄값에 따라 사망의 선언을 선고받은 악한 죄인들이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사망의 저주가 내려졌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사단에 의해 죄를 갖게 되었고 저주와 사망의 멸망에 빠지는 것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독생자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받으심으로 그 죄값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이는 곧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넘겨받아서 그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던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달려 죽은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십자가로 하여금 사단(죄)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며(창3:15-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죄가 더 이상 세상에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사건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이 우리 육신을 통해 넘어 뜨릴 수 있기 때문에 또다시 행위에 빠질수 있는 나를 주님이 아예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다 못박혀 죽은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내가 죽어야만 우리주님이 내안에 들어오실 수가 있기 때문에......


자 이제 예수님은 온 세상 죄를 짊어진 죄인의 신분으로 죄 값에 따라 죽음의 감옥에 계셨다.

죽음에서 탈출 할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 모든 죄 값이 다 갚아져야만 한다.

 

죽은자 에게 두 번 죽일 필요가 없듯이 제자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사흘째 되던 그때에 예수님은 이제 완전히 죽었다라고 절망과 낙심속에 뿔뿔이 흩어져 자기길로 가고자 하는 그때에 다시금 살아나셨다.

 

죄 값이란 인간마음속에 완전한 절망과 죽음이 확정되는 그 기간이 바로 죄 값의 형량이다.

그렇다. 나는 끝났다라고 심령의 애통을 가진자만이 바로 죄가 끝나고 주님의 의를 받아들일수 있는 부활(출소)의 소망을 가질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완전히 죽어 두 번다시 우리주님을 볼수 없다는 그 절망감과 허탈감이 제자들사이에 받아들여지게 되자 비로서 주님은 사망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그들에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죽었던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제자들이 바로 알아보고 믿었는가?(마리아 제자, 엠마오길의 두제자)

아니다.

 다들 몰라봤고 주님이 말씀하셨어도 의심하였다.(도마) 

 

이처럼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살아나셨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다 사라진채 오히려 의심하면서 맥이 다빠진 사람마냥 절망속에 있던 그들이었다.

부활은 이처럼 자신이 완전히 죽어져서 손톱만큼도 기댈곳이 없을때 비로서 주님이 건져주신다.


사흘이 되자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죽음의 지옥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나와 출소라는 부활의 기쁨을 입었다.

 

이는 육신이 다시 살아났다는게 부활이 아니라 모든 죄값이 다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의 감옥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부활(출소)하신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신 예수님이 죽음의 지옥에서 그 모든 죄값을다 갚으심으로 예수님은 죄가 없는 의롭고 거룩한 모습이 되셨다.

 

세상죄를 지신 예수님이 죽어서 하늘로 가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죄값을 다 치르신 주님이 사단과 그 졸개들과 더러운 죄를 가지고 있는자만이(불신자) 있어야 할 지옥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죄값을 다 치르신 주님은 거룩하고 흠없은 모습으로 부활하셨고 인간의 죄를 다 끝냈다라는 증표로 하나님앞에 먼저 가셔야만 했다.(요20:7)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죄값을 다 치뤘다는 것을 어느누구도 말할수 없도록 증명하셔야만 했기에 사단의 참소와 자기의를 주장하는 모든자들을 잠재울수 있도록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셔서 그 증표로  손과발의 못자욱과 허리의 창자욱을 그대로 보존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한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우리모두는 아담의 후손으로 모두 원하던 원하지 않든 죄인이 되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인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되었을때 우리가 날위하여 죽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나의 죄가 모두 주님의 보혈에 의해 벌겋게 가려졌을 뿐만 아니라(죽음을 의미)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못하도록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꼼짝못하도록 죽여버리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다 시피 내가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해서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었지만 사단은 죽은 나를 이용해서 항상 끊임없이 선과악을 저지르고 있는것이다.

 

세상중심적 교육을 통해 윤리와 도덕, 양심이 좀더 앞서 있는 자들에게는 끊임없이 선을 행하도록 부추기게 해서 자기의로 하나님앞에 갈수 있다는 자기의의 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있으며, 거짓과 폭력과 힘이 앞서는 자들에게는 자기 이익의 만족을 위해 스스럼 없이 악을 저지르고 마는 추악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바로 이 두 범주안에 있다는 것이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약한 약점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범죄하게 만들기도 하고 선한행위를 하여 잘한것도 있게해서 우리의 허물과 약점을 가리게 하고 잘한 것을 자기를 내세울수 있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났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죄를 저지를수 있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잘한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떠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문제는 이죄가 이전에는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길잡이였지만 주님을 믿고 거듭난 이후에는 더 이상 이 죄는 우리하고 상관이 없게 된것이다. 그래서 벗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죄를 지은 책임과 결과를  묻게 될 때는 우리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아무리 사단이 의해 우리가 어쩔수 없이 범죄했다하더라도 그 범죄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당하고 슬퍼하고 엄청난 낙심에 빠져있다면 우리는 그에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말 힘들지만 자기에게 이것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다.

아니 말해서도 안된다.

그러면 영적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오직 나와 내 안의 사단에게만 말해야 한다.

“이것을 행한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한 죄(사단)니라” (롬7:17, 20)

 

사단이 나를 이렇게 범하게 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앞에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나는 이렇듯 육신아래 팔려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이렇듯 어리섞고 무지한 자입니다.

나를 구하신 주님의 보혈에 잠기기를 원합니다. 또한 영원히 용서하신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것은 다시 나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회개의 기도가 아니다.

회개는 이미 주님을 믿고 받아들일때 이루어진것이다.

 

지금의 기도는 또다시 이러한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드리는 자백과 통한의 기도 인 것이다.

 

물론 우리의 모습은 믿기전 세상죄악에 거할때나 믿고 거듭났을때나 늘 부패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만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악한 존재이기 드러나기 때문에 영원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안고 죄에 대하여는 철저히 절망하면서 어느 것 하나 나를 바라봐도 기댈 것 없는 무능한 자기자신을 바라보면서 오직 주님의 이끄심만을 철저히 바라고 바라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영으로는 주님에 의해 거룩하여진 자신을 확신하면서 비록 나는 죄인중의 괴수지만 주님께서 날위해 이루어 놓으신 은혜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때 우리는 진실로 마음중심에서 주님께 고백을 드리게 된다.

 

“주님의 깊은 사랑으로 제가 정말 제 마음에 죄가 사라진 의로운자가 되었군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을 우리가 가진 가장 조그만 믿음안에서 겸손하게 고백할수 있는 우리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렇다. 우리의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의 법아래에서 보니 나에게 죄가 하나도 없구나 내가 죄없는 의인이구나 내 마음에 죄가 하나도 없구나.....라는 것은 주님이 나의 주인되셨음을 인정하는 확실한 고백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들을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를 삼기위해 직접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제가 저를 향해  죄가 사라진 의로운자라고 하면 교만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믿음도 없이 이러한 고백을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하고 무지하고 어리섞은 사람이다.

 

 

이사람은 자기가 무언가를 잘해서 세상기준으로 올바르게 살았다라는 자기 중심적 생각에 의해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될뿐이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라고 증언하고 있고 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라고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죄인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셧다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이 임해져서 자신은 이제 죄에 대하여 죽은자임을 발견하고 주님의 부활로 인해 자신의죄값이 다 갚아져서 더 이상 죄의 어둠움에 거하지 아니하고 해방을 갖게 되어 자유와 기쁨속에 거듭난 사람이 되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거듭났다 하면서도 실상 속마음에는겉으로 드러난 늘 자신의 실수투성이인 못난 행위를 보고는 그 행위에 가책이 되어 늘 자신을 죄인이라 정죄하면서 이 못난죄인을 용서해달라는 간구를 한다........  

 

*롬8:1-2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거듭남이란 부활을 믿는 신앙을 의미한다.(고전15:42-44)

이 거듭남은 다시 새로 태어난다는 새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옛것이 반드시 죽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육신이 인위적으로 죽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다.

죽음은 자신이 정말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것이다.

기어다니는 배추벌레나 송충이는 자신의 더럽고 징그러운 껍데기의 옷을 벗어 버릴때 비로서 새로운 나비나 나방이 되어 훨훨 날아다닌다.

 

분명히 한 개체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어 이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전에는 땅을 보고 기어다니는 징그러운 벌레였지만 육체의 옷을 벗어버릴때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온세상을 돌아다닌다.


이전에는 오직 배추 잎과 흙만을 먹고살아가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꽃을 찾아서 달콤한 꿀을 빨아먹고 사는 존재로 바뀐것이다.


우리의 부활도 이와같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항상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인 구더기 만도 못한 자였다.


우리 사람도 구더기나 바퀴벌레를 보면 그냥 본능적으로 혐오스러워서 바로 발로 밟아 죽이듯이 아무리 우리가 잘생기고 선한일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죄가 눈꼽만큼이라도 남아있으면 하나님은 죄 그자체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더기나 바퀴모기를 보면 바로 싫어하듯이 죄가 있는 인간을 그 즉시로 사망이라는 율법의 철퇴를 내리시고 마는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 인간의 죄를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은 더 이상 죄에서 종노릇 하는자가 아니라 해방을 받아 자유인이 되어 맘껏 돌아다닐수 있게 된것이다.

 

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깨닫는 자는 바로 자유인이 되는 것이요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자는 그 마음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주님이 이루신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은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이 사단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멸망당하고 말뿐이다.

 

우리주님은 이 세상 죄악의 권세를 이미 2000년전에 다 멸하시고 의의 세계를 이루었다.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죄에서 자유케 되어 이미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고 살지만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자들에게는 그대로 저주와 멸망이 비켜나지 않고 남아있어 사망의 화살이 그대로 꽂히고 마는 것이다.

 

얼마나 정확한가..........

이제 우리는 주님께 찬양해야한다.

나구원받았네 너구원받았네 우리구원받았네나자유얻었네 너자유얻었네 우리자유얻었네

오 우리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오 올무가 벗어졌네 해방되었네 우리도움은 주의 이름


주님의 은혜로 나는 거듭났다.

주님의 은혜로 나는 거듭났다.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이 십자가의 구속과 죽음에서의 자유(부활)를 믿는 나는 이제 내 안에 죄가 사라진 거듭난자가 되었다.

그렇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만 부활하는것이 아니라 악인도 함께 부활한다.

 

*행24:15

-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게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러나 의인도 부활하고 악인도 함께 부활하게 되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앞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나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좌앞으로 두렵고 떨린 마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담대히 나아갈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내 더러운 육신은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죄를 만들고 더러운행위로 나를 넘어지게 하지만 이제 나에게 주님이 계신다.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날 위하여 죽으시고 살아나신 주님만을 바라본다.

 

주안에 모든 소망이 있다.

주안에 내 생명이 있고,

주안에 내 모든 것 다있다.

오 주님 나는 자유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그몸이 깨끗하고 거룩하고 몸이 되었듯이 저역시 주님과 함께 부활되어 죄와 죄책감에서 풀려나게 되어 함께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의로 깨끗하고 거룩한 몸이 되었습니다.

(고전1:30, 6:11)


이제 알았다.

주님의 부활의 의미는 바로 우리가 마지막날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설때 의롭고 거룩하게 하시기위하여 부활하셨다는 것을!!

 

주님이 부활하셔서 원래 죄가 없는 몸으로 변화하셔서 하나님앞에 담대히 갈수 있었듯이 우리도 주님의 부활신앙에 동참하면(거듭나면) 죄가 사라진 거룩하고 의로운자가 되어 하나님앞에 담대히 나아갈수 가 있게 된다.

 

*롬1:17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주님의 부활로 인해 "내안에 죄가 다 사라졌다"라고 고백하자.

 

“나는 내안에 죄가 사라졌다” 라고 하는 고백이야 말로 진정 주님에 대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킨 참된고백이 되며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헛되지 않은 믿음의 고백이 되며, 주님이 나를 위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이루어놓으신 희생의 역사가 진리로 자유케 되어진 가장 완전한 겸손의 고백이다.

 

만약 이렇게 완벽하게 해 놓았는데도 아직까지 내 마음에 죄가 있어 죄를 고백하고 죄를 씻어야 한다는 자가 있다면 이런 사람이야 말로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완벽한 구속사역을 정면으로 거부한 가장 악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요16:9--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결  론

 

이제 우리는 죄에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아담의 피로 인해 우리모두가 죄인이 되었다는것을 성경의 배움을 통해서 이론과 지식들로 우리 스스로 죄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지 얼마나 무서운가를 모르는 무감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여도 죄 중에 크고 무거운 악한 행위만이 죄인줄 알았다.(예수믿지 않는죄, 세상에서 악한짓 하는죄, 이런자들을 죄인으로 규정)

행단보도 한번어기고 주차딱지 한번 떼이는 것은 죄 취급도 하지 않는것이 우리들이었다.......

 

간음한것은 죄로여기면서도 속에 음란한 마음을 품은것은 죄 취급도 하지 않았다.

왜?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스스로 위로했던 우리들이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이처럼 사람들속에 역사해서  열심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또는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등 무거운 행위범죄가 마치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중죄로 여기게 하고는 이런것을 하지않고 열심있는 종교적 행위로 천국에 갈수 있다고 우리마음속에 소근거리고 있다.

 

사단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래서 자유와 감사와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예전 구약시대처럼 행위에 따른 규율의 법에 매인 신앙생활을 요구하고 준수해야 천국에 가도 잘 가게되는 줄로 사단은 믿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신앙의 법과 규율이 잘 안지켜지고 신앙으로 살겠다고 결심한지 한달도 못가 포기할때가 얼마나 많은 가!!...

 

이렇듯 허물이 계속 드러나니까  우리 속사람은 날마다 주님께 울부짖는다..... "나는 연약합니다. 나는 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라고 눈물흘리며 말한다.

 

그리고 이번엔 잘하겠다고 다짐하고 또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늘 실패한다....................

 

그러나 사람들앞에서는 바리새인들처럼 회칠한 무덤이면서도 겉으로는 신앙으로 겸손하고 선한 모습으로 자기 모습을 가리우는 위선적인 모습으로 편안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것처럼 자기를 가리워 놓고 말았다...........

 

진정으로 거듭나기를 원한다면 이런것부터 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는 나는 잘하나 못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진노의 심판으로 죽을수 밖에 없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악한 죄인임을 고백하여 완전히 자기 포기라는 선언을 마음중심에서 내 쏟아야 한다.

 

주님이 이끌어 주지 아니하시면 자기앞에 지옥문이 있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울부짖음을 드려야 한다.(회개의 기도)

 

사단은 타락한 아담의 피로인해 우리역시 사망의 저주아래 이미 속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잘 가려놔서 멸망받을수있는 지옥행 열차를 타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드리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써왔다.

 

세상에서 가장 큰죄가 무엇인지 아는가?

살인간음도적질우상숭배악한생각탐심음란거짓말이간질수근댐배신부모거역...한다고 해서 지옥행을 접수하는것 아니다..........

 

주일성수기도예배봉사충성헌신십일조구제선행.........이런거 어긴다고 괘씸해서 천국의 생명책에 빠지는것도  아니다.

 

각 사람이 살아있는동안은 악한길에서 돌이킴을 받을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을 돌이키면 회복될수 있는것이 바로 이런 삶들이다.

 

*시145:8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겔18:21-23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31-32

-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리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겔20:17

-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 보아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겔33:11

- 주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겔33:15-16

-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겔33:19

-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 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그렇다.

진짜 구원받지 못할 죄는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구주로 믿지 않는게 바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

 

예수그리스도 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온세상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주님은 인간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가장 아름다운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신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주님을 믿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랑의 초청에 정면으로 거부한 자가 되어  불신이 멸망으로 들어가는 사망의 죄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8:23-24

-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16:9

-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갈3:22

-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이 글을 처음부터 읽는 많은 분들이 죄많은 날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사함과 거듭남을 이제 완벽하게 알았다 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에 실제로 다가 오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통해 보여주는 방대한 이론과 지식은 종교적 학문의 한 과정으로 남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되신 예수님의 영이 내안에 거해야 한다.

 

*요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저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부디 바라기는 이 말씀을 학문이나 이론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각자 실제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랄 분이다.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내가 생각하는 옳은 기준을 내려놓고 ) 진정으로 거듭나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다면 말씀앞에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보잘것 없는 이 글이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에 거한자라고 한다면 이 글을 통해 감사와 기쁨으로 주께 영광돌리겠지만

그렇지 못한자들은 의문이 되어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앞에 나란 존재가 어떤자 인가를 알아 말씀과 믿음으로 거듭나서 부름받아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인생에 단 한번은 이런 말씀앞에 부딪힘을 가져 진지하게 묵상할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분들도 이사실을 믿고 받아들여져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글은 2006년도 부활절후 4주간에 걸쳐

 

전도용으로 전하였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예언

*마16:21(마17:9), 막8:27-31,눅9:18-27

* 마17:22-23 막9:30-329, 눅9:43이하

*마20:17-19, 막10:32-34, 눅18:31-34

 

*마12:38(표적)눅11:29-3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요2:19-22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

*요5:21

- 아버지께서 죽은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5:25

-....죽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6:40

-내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57

-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11:25-26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후4:14

-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부활논쟁 = 마22:23-32, 막12:18-27,눅20:27-40

*마22:30-32

-부활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눅20:34-36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이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출처 : 예수그리스도 복음 선교회
글쓴이 : 산울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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