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글

[스크랩] 성경은 과학이다.

마태오1 2013. 7. 12. 12:39

성경은 과학에 위배되는가?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성경적이다

완전한 과학자이신 하나님

성경이 사실이냐 하는 말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내용)이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야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간은 자기의 지식, 사고 능력의 범위 내에서 최소한 논리적인 모순이 없어야 어떤 사실을 믿을 수 있다.

그 사실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훨씬 초월하고, 우리의 사고능력 안에서 그 논리성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불가능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 11:7)


그러나 인류의 역사적, 과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허무맹랑하게만 생각되었던 성경의 기록이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감으로써 현대인이 성경을 보는 눈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아 3:7)


성경 = 인류 미래사 - 연대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과거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라면 성경은 인류의 미래사를 연대 없이 기록한, 다시 말하면, 우주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 속의 많은 예언들은 오늘 날 이미 이루어진 과거사로 있으며 앞으로 올 미래사도 있는 것이다.

 

성경이 난해하다는 이유는, 성경 중의 많은 말씀이나 예언들이 시대가 지나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 후에, 혹은 어떤 과학의 발달로 그 사실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었을 때에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 현대과학(1945년 원폭실험이래)으로서만 설명이 가능한 에스겔서의 말씀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런데 에스겔서는 지금부터 26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장사할 사람으로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일곱 달 후에 그들이 살펴보되 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성의 이름도 하모나라 하리라 그들이 이와 같이 그 땅을 정결케 하리라(겔 39:14-16)


이는 바로 핵전쟁 후의 올 장사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원자력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말씀이다.


일곱 달 후에 순행자가 사람의 뼈를 발견하면 그 곳에 표를 세우고 지나가고, 그 후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한다고 되어있다. 이와 같이 하는 이유는 핵전쟁 이후 7개월이 경과되어야 방사능이 수백분의 일정도로 감소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살은 썩고 뼈만 남아 있겠지만, 그 뼈 중에서도 아직도 허용치 이상의 방사능이 나오므로, 반드시 방사능 차폐 복장을 한 장사팀이 와서,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핵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동시에 성경이 얼마나 정확하게 예언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오늘 날 유전공학의 출현은 과학계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오용된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생태계의 변화는 물론 인류역사에 커다란 재앙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황충과 같은 무서운 독충의 생산이나 출현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계 3:9)


그래서 오늘 날 많은 유전 공학자들은 이런 공학의 재난(?)을 방자하기 위하여 유전공학을 동물에는 적용하지 말고 식물에만 적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이나 욕심, 또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원자력이 평화적 이용보다는 핵무기로서 더 많이 이용되어 온 것과 같이 유전공학 또한 악용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과거 몇 년 동안 아프카니스탄, 캄보디아, 라오스에서는 소련 비행기가 투하한 '황색의 비'라고 불리는 비에 맞아 많은 사람들이 살상되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 비를 맞은 사람은 이내 몸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대량의 내출혈로 고통스럽게 죽어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 강국이 대량 보유하고 있는 무서운 화학무기의 일종인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하여 아직 한번도 사용치 않고 쌓아 둔 가장 가공할 무기가 있는데 이것이 곧 생화학 무기(일명 세균탄)이다. 지금까지의 보고에 의하면 생화학 무기 1톤이면 지구인구의 30배인 1천억 명을 일시에 몰살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생화학 무기의 특징은 무서운 세균으로 된 것으로, 이 세균은 살아있는 생물과 접촉하며 그 접촉부분에 침투, 세포를 파괴하여 썩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생물의 물기가 많은 곳에 쉽게 침투하여 썩게 하므로, 물기가 많고 접촉이 가장 용이한 눈이나 입부터 썩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슥 14:12)


이 엄청난 예언이 또한 2,500년 전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 과거 2천년 동안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하나님의 말씀이 오직 현대 과학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1981년 미국 미시간대학의 Kirshner 박사, 예일대학의 Oemler 박사 등 5명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미국 화학회에서 발간하는 Chemical Engineering News의 10월 19일호에 발표되어 과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 원본의 일부를 성경말씀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Stellar Region Nearby of Galaxies.

... A team of astronomers has sound a huge region nearly empty of visible galaxies. It covers 30 to40 of the sky and takes up about 1% of the entire observable universe. In fact, it is large enough to hold about 2000 galaxies the size of the Miky Way. "To have found a population density of less then three times the average would have been a rare find""But finding that the average is exceedingly hard to understand."

 

.....Building from such a fairly uniform distribution, they had not predicted that such a vast region of space would be so empty........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He(God) stretches out the north ever empty place) 땅을 공간에 다시며( and hangs the earth on nothing) 물을 빽빽한 구름에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욥 26:7-8)


이 내용은 북극성 주변의 방대한 지역, 즉 2천여 개의 은하수를 넣을 수 있을 만큼 큰 지역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은하수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 대단히 큰 것으로 상상되는 태양계(반경이 약 59억km)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해서 모두 10개의 별을 가진 아주 작은 계(System)이지만, 전체가 렌즈 모양으로 생긴 은하수는 약 1천억 개의 별을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별들의 집합체이다 지구는 이 거대한 은하수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거대한 은하수 약 2천 개가 들어갈 수 잇는 넓은 공간이 거의 텅 빈 체로 지구의 북쪽에 보이는 북극성 근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우주 공간에 별들의 밀집도(Population Density)가 평균 밀집도의 1/3정도 되는 곳도 흔하지 않은데 이 지역만은 평균밀집도의 1/10 미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천문학자들이 최근까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점과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생각되는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된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말씀들이 오늘에 이르러서야 과학자들에 의하여 그 신비의 베일이 하나씩 풀려 가는 사실 속에서 새삼스럽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는 것 같으며 우리가 이루어 놓은 모든 학문은 초등학문이라는 성경말씀이 이해된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하였더니(갈4:3)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현존, 불변하는 절대자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실까? 물질계(Universe, 우주 시간과 공간)를 규명하는 물리적 법칙은 시공간 연속(Space-Time Cortinuum)이론으로서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규명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am that I am)(출 3: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주는 영(Spirit)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하나님은 자기 존재를 "I am that I am"( 나는...이다, 스스로 있는 자)"이라고 표현했다. 시제를 현재로 사용한 것이다. 우주 공간의 모든 변화는 시간의 함수이다. 현재라는 개념은 미래와 과거의 경계, 즉 정확하게 시간이 정지된 상태 Zero-Time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간이 영(Zero)이라는 정지의 개념은 불변의 의미로서, 절대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언제나 현존하는 변화하지 않는 절대성을 가진 존재이다. 언제나 현존하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곧 구속을 초월하는 영(Sprit)이며 자유 (Liberty)인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시다.


유한한 우주, 무한한 하나님


일찍부터 이 거대한 우주를 연구, 관찰해 온 인류에게는 우주는 유한한 것일까? 무한한 것일까? 하는 것이 커다란 의문점으로 남아 있었다. 고대 희랍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에서 시작해서 코페르니쿠스(1473-1543), 갈릴레이(1564-1642), 뉴톤(1642-1727), 칸트(1724-1804)에 이르기까지 이 논쟁은 계속되었으며, 그 해답은 우주는 무한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한'이라는 말의 개념 그 자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이라는 뜻을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특히 만유인력을 주장한 뉴톤은 무한정 퍼져있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라는 소위 '절대시공간 이론'을 주장했지만 20세기 초 그 당시 젊은 과학자 아인시타인은 절대시공간 이론을 부정하고 앞에 언급한 상대성 이론의 근간이 되는 시공간 연속이론을 발표하여 과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위 이 두 말씀이 상대성 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상대성 이론을 쉬게 이야기하면, 관찰자의 위치나 마음상태에 따라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또 같은 시간이라도 즐거울 때는 빨리 흐르지만, 괴로울 때는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물질이 존재하는 시공간은 휘게 되고(Curvatur of Space) 이 휘는 성질 때문에 중력(만유인력)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질이나 빛(힘)의 존재에 의해서만 규제되는 우주의 시공간은 휘게 되고 따라서 이 거대한 우주는 유한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 거대한 우주를 붙들고 있는 '만유인력'을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유한 우주의 개념은 적어도 두 가지 조건, 즉 우주의 중심(Mass Center)과 우주의 가장자리 (boundary)가 설명되어야만 성립된다. 오늘 날 천문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과학 지식을 동원해서 우주의 중심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찾을 수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유한한 물체에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중심을 유한한 우주에서는 찾을 수없다면(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면)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5-6)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성경 말씀 속에서 천문학자들이 수십 세기 동안 찾아 온 해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하는 이 거대한 우주는 유한하며, 창조자 하나님만이 무한하다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 1:15)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이 무한한 능력의 존재이신 창조자 하나님만 이 우주를 붙들 수 있으며(히 1:3) 우주의 오묘한 질서(욥 11:7)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눈으로 무한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


그러면 이러한 유한 물질계(우주)의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에너지는 물질계의 가장 작은 기본입자이다. 그리고 물질계는 에너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과정을거쳐 생성되었다.


  에너지(hv) → 소립자 → 원자 → 분자 → 물질계(우주)


실제로 빛이 상호 작용해서 전자와 양전자가 생성되며<hv+hv(빛)→e(전자)+e+(양전자)> 이들로부터 여러 가지 원소가 생성되는데 가장 작고 제일 먼저 생성된 것은 수소(H)로서 전 우주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근본 에너지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우리의 육체활동에 필요한 음식(food)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에 필요한 비음식(nonfood) 에너지이다. 비음식 에너지원은 운동 에너지(K,E.)와 위치에너지 (P,E.)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두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붙드시는(히 1:3)' 즉 중력에서 기인한다.


태양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에너지를 알아보자. 우주공간에 퍼져있는 수소가스에 만유인력 (중력)이 작용하여 수소를 한 곳으로 모이게 한 것이 태양인데, 그 중심부에는 약 4천억 기압(중심부의 수소밀도는 88)이라는 엄청난 압력 때문에 온도가 천만 도나 된다(중력→압력→열).


이와 같은 높은 압력과 온도는 수소 기체를 핼륨 기체로 바꾸면서 엄청난 빛과 열을 발생한다(이것이 바로 핵융합으로서 수소폭탄의 원리이다). 이렇게 해서 태양에서는 X- 광선에서 라디오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파장의 여러 가지 빛이 방출되는데, 이 중에서 가시광산과 적외선을 제외한 자외선이나 우주선(프라스마 등) 등은 생명체에 유독한 빛이므로 지구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욥 38:9-11) 


다행스럽게 욥기에 기록된 강보, 곧 오존층과 반알렌 벨트라는 방사능 벨트에 의해서 유해한 우주선들이 모두 차단되므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보호를 받고 있다.


만약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강보가 제거된다면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순식간에 죽고 만다. 생명체에 필요한 빛만이 지구표면에 도달하고, 식물들은 그 빛을 이용,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에너지를 저장한다.


그리고 인간이나 동물은 이 식물을 섭취하여 식물에 저장된 에너지를 우리의 활동 에너지로 사용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연약함 중의 하나는 태양 에너지를 직접 취하여 육체활동에 이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식물이나 동물을 통해서만 에너지를 얻는 데에 있다.


또 하나의 에너지원인 수력발전은 물의 낙차를 이용한 위치 에너지이다. 이 낙차(위치)는 지구중심, 즉 중력의 중심지에서 거리(높이)의 차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으로, 그 근원은 만유인력, 곧 중력이다. 그러면 이 중력은 무엇인가?


자연에는 네 가지 종류의 힘(energy) 즉, 중력, 빛, 강력 및 약력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약한 힘이 중력인데, 강력의 1/10, 빛의 1/10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힘이다. 이렇게 작은 중력(만유인력)이 우주의 무대를 독차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크기와 더불어 질량이 축적되며, 전기처럼 +, -의 상쇄가 없는 원격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를 지배하는 중요한 시간과 공간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만유를 붙들고 있는 힘은 곧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다(히 1:3). 이렇게 우주(우주=시간+공간)의 모든 공간(공간=물질과 빛이 존재하는 곳)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 존재한다.


삼위일체로서 하나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


하나님을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신 성부, 특히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위해서 갖은 곤욕을 치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과 그 후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느껴왔다. 그럼 이 삼위일체를 우리들의 자연현상 속에서 한번 관찰해 보자.


우리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통해서 창조자의 능력과 실존을 이해하고 그를 경외하게 된다. 지구상의 생명과 가장 관계가 깊은 물의 역할과 삼위일체를 비교해보면 삼위일체의 참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세 가지의 중요한 형태를 갖는다. 즉, 구름이나 수증기 같은 기체상태, 물의 형태인 액체상태, 그리고 온도가 내려가면 얼어붙는 얼음이나 눈과 같은 고체상태의 세 가지 다른 물리적 집합상태를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집합형태의 상호 변환은 지구상의 각 계(System)의 에너지 균형을 조정함으로써 자연계의 질서와 균형을 이루어주고 동시에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의 생명을 보호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각의 상이 자연 중에서 하는 일이 모두 서로 다르고 대단히 독특하다. 하지만 물이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고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있을지어다  (고후 13:13)


이와 같이 성부의 시대는 말씀의 시대로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창조의 뜻을 전해 주셨고, 성자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잠시 인간의 육체를 빌어서 우리에게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증명하여 주셨으며, 오순절에 내린 성령은 오늘날까지 교회를 통해서 창조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물의 역할이 그 형태에 따라서 다르듯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지만 그 역할이 시공간에 따라서 서로 다르다고 하는 것은, 그 논리가 정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경의 역사성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체


이러한 끊임없는 에너지의 공급에 의해서 그 생존이 가능한 인간의 육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 인간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원소는 지구나 우주에 존재하는 백여 종류의 원소 중에서 수소, 산소, 질소, 탄소를 포함하는 24종류의 원소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그 조직은 너무 복잡해서 현대 과학지식을 총동원해도 극히 일부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흙 속에는 100여 종류의 원소가 있지만, 인간이 식물을 통해서 흙에서 섭취하는 원소는 인간에게 필요한 24종류의 원소이다. 나머지 원소는 직 간접으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의 형태로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그 육체는 분해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창 3:19)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흙에 속한 것이다. 인간 역시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흙(집)속에서 흙을 먹으며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그러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식물,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생물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생물을 식물과 동물로 구분해 왔다. 그리고 동물 중에서 인간은 사고(생각)하는 동물(인간=육체+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정말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이것밖에 없을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좀 더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면 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


'생각(혹은 정신)'이란 비물질적인 차원에 속하며, 경계도 없고 또 고정된 한계도 없다. 정신세계에 대한 물질세계의 관계는, 전체에 대한 아주 작은 부분과 같다.


런데 이렇게 경계도 한계도 없는 인간의 생각은, 한정된 아주 작은 육체 속에 그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육체가 추구하는 것에 한정되기 쉽다. 즉 인간의 생각은 훨씬 큰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작은 육체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육체의 욕구와 그 욕구를 제어하려는 양심의 틈바구니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 평생을 살아간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양심이 있으며, 미래(더 나아가 영원)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이는 사람에게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육체와 혼 이외에 또 하나의 속성인 '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히브리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인가에게는 육과 혼 외에도 영(Spirit)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인간=육+혼+영).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사실상 원시인이나 근대인, 무신론자나 유신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사후에 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어떤 막연한 생각 내지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전도서 3장 15절에 나타나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곧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일 것이다.


영원을 사모하는 영(Spirit)과 자유(Liberty)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의 양심 속에 있는 완전한 자유, 곧 시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양심의 자유는 영의 속성으로서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며, 이것만이 영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양심의 자유는, 어떤 국가나 사회, 금전이나 권력에 의해서 얻어지거나 짓밟힐 수 있는 자유가 아니고, 오직 무한한 창조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7-18)


하나님이 형상(Sprit)으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단절되었던 선한 양심(영)을 다시 찾고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얻는 것이 인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는?


그러면 지구상에서 인간의 영원한 생존은 가능한 것일까? 물리학에서 최대의 신비는 중력과 빛인데, 1905년 아인시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의해서 이 빛의 신비가 벗겨지면서 발생된 우리 인류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이 엄청난 빛의 신비는 대량 살상무기인 수소폭탄과 원자폭탄을 생산함으로써, 인류에게 복지 대신에 대량 학살이라는 무서운 핵전쟁의 위험을 안겨 주었다. 인간을 위한 과학이 전 인류를 떼죽음을 부르다니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무서운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간이 이러한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땅(바위) 속 깊숙이 굴을 파고들어 가거나 아니면 이미 계획하고 있는 미국의 우주비행 계획같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외계로 나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오바댜를 통해서 오늘날의 과학과 인류의 장래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옵1:3-4)


고도로 발달된 과학에 의해서도 인간의 영원한 생존은 결코 보장될 수 없으며 우주의 어느 공간에도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는 없다. 오직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길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길뿐이다(요 17:3).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기의 계획을 인류에게 보여 주고 있으며 역사적,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실존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기계문명 속에서도 완전한 평화와 안전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목말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상에는 작으만치 40억의 인구 각각에게 3억 7천만 톤 이상 배당될 만큼 많은 물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물로도 인간 육체의 영원한 해갈을 면할 수 없음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창조자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계 22:17)를 얻는 길이다.


  필자 : 장인순 박사(한국원자력연구소장)

출처 : 예수그리스도 복음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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